新聞column

[김대중 칼럼] 미국엔 있고 한국엔 없는 '어른들'

bindol 2018. 9. 11. 04:50


경제 난맥·안보 공백 보이는 文 정부 견제할 '어른' 不在
야권 안에선 극심한 대립, 기회주의, 보신주의 활개쳐
現 여권 장기집권 막으려면 '박근혜' '탄핵' 족쇄 벗어나야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미국 정가(政街)는 지난 5일 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익명의 백악관 내부 고발자의 기고로 벌집 쑤신 듯 법석이다. '나는 트럼프 행정부 내 저항 세력의 일원'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은 대통령으로서 트럼프의 자질에 의문을 제기하고 백악관(또는 행정부) 내에 그의 즉흥적이고 잘못된 정책 입안 과정을 견제하는 '어른들'(adults)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미국은 이 '어른들'이 누구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어른들'이란 대목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대통령을 견제하는 '어른'이 없다. 경제 난맥을 지적하고 안보 공백을 염려하며 더 나아가 내일의 대체 세력을 이끌려는 정치 지도자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40%대로 떨어졌다. 80%대의 높은 지지율로 시작한 문 대통령은 1년 반도 안 돼 절반으로 추락한 것이다. 웬만하면 긴장할 법도 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보일 만도 한데 문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까딱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적된 '잘못'에 오류가 있다 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기들의 방향이 옳았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라며 어깃장을 놓는다. 문재인 정부의 태도에서 우리는 나라의 '어른'과 야권의 지도자 없음을 깔보는 집권 측의 오만을 본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 "거짓으로도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 "저에 대한 지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 하겠다"―이것들이 문 대통령이 16개월 전 취임식에서 한 말인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어찌 보면 그는 지금 그가 그때 한 말과 정반대 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문재인의 사람'들은 한술 더 떠 기고만장이다. 청와대 경제 사령탑인 정책실장은 수도권 집값이 뛰고 있는데 "내가 강남 살아봐서 아는데 거기 살 필요 없다"고 국민들 부아를 긁고 있다. 민정수석이라는 사람은 소관 업무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내용을 외부 출판물에 기고하면서 '학자 자격' 운운하며 사람들 약을 올린다. '비서'의 총책임자는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라며 "지난 1년은 결국 내일을 바꾸는 건 우리 자신의 간절한 목표와 준비된 능력임을 새삼 깨치는 시간이기도 했다"고 했다. 미국의 의사에 상관없이 한국의 독자 행동과 의지를 강조하는 '신(新)자주노선'의 천명이었다. 누가 대통령이고 누가 비서실장인지 헷갈린다.

보수 진영에는 진정 '어른들'이 없는 것인가? 정부 내에서 저항까지는 아니더라도 비판 정도라도 기대할 수 없다면 정부 밖에서라도 나서는 사람이 없는 것인가? 근자에 과거 정부에서 경제 책임자를 지낸 한두 분이 나서서 문 정부의 경제정책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나라 전반으로 볼 때 책임 있는 '어른들'의 목소리는 잠잠하다.

무엇보다도 야권의 조직화된 목소리와 심도 있는 비판이 아쉽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질 때 그것을 받아서 치고 올라오는 대안 세력이나 차기 지도자의 면면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보인다. 과거 군부나 장기(長期) 독재를 종식시킨 YS, DJ 같은 존재가 없다.

그나마 있던 사람들도 친박-반박, 탄핵-반(反)탄핵 등으로 크게 상처 입고 불구 상태다. 어떤 인사들은 집권 세력의 적폐 몰이에 걸려 있기도 하다. 이리저리 눈치 보며 기회를 노리는 '지하 인물'들도 있다. 기회주의, 보신주의가 활개 친다. 언론에 '문통의 지지도가 떨어지니까 잠룡들이 기지개를 켠다'는 기사가 뜨는 것 자체가 보수 진영 '어른'들의 부재(不在)를 반영하는 것이다.

'어른' 쪽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누가 나서서 보수권을 추스르려고 하면 소셜미디어에는 '탄핵 원조'니 하면서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저주를 쏟아내는 사람들도 문제다.

이런 사정으로는 문 정부를 무너뜨리기는커녕 그들의 독선과 독주를 견제하기도 힘들다. 장수가 없는 적진을 보면서 스스로 후퇴할 사람은 없다. 보수 진영이 '박근혜'와 '탄핵'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2020년 총선은 물 건너갔고 2022년 대선도 마찬가지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20년 집권' 장담이 결코 오만한 헛된 소리가 아닌 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