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료들은 일본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자 이들은 길을 잃었다. 정부와 관료의 역할이 크게 줄어들면서다. 그래도 산하 공공기관에 대한 감독 권한은 여전했다. 힘 빠진 관료들은 낙하산 인사로 만족해야 했다. 일본어로는 ‘아마쿠다리’(天下り).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조직 내부에서 올라가거나 스카우트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위에서 내리꽂는 인사라는 얘기다. 이런 식으로 살길을 찾은 일본 관료들은 1차 낙하산에 그치지 않는다. 통상 3년 임기로 공공기관의 이사장 등으로 근무한 뒤에는 후배들의 눈치를 피해 자리를 물려준다. 그런 뒤 한두 차례 다시 자리를 옮겨간다. 그럴수록 조직의 규모가 작아지고 연봉도 줄어든다. 반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신도 모르는 직장’으로 숨어들어 ‘평생 현역’으로 살아가게 된다. 일본 관료들은 평생 수입을 낙하산까지 계산한다고 알려져 있다. 현직에 있을 때는 큰돈을 모을 수 없지만 낙하산을 거치면서 ‘성공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국민에게 끼치는 폐해는 극심하다. 노조가 원하는 대로 복리후생을 퍼주고 공기업의 방패막이를 자처한다. 결국 비효율적인 공기업의 독점을 강화해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일본은 지난 20년간 낙하산 인사를 틀어막는 제도를 대폭 강화해 왔다. 한국도 일본 못지않게 낙하산 인사가 극심하다. 박근혜 정부에서 세월호 사태를 통해 드러난 것처럼 해양 및 선박 감독기관에는 해양수산부 퇴직 관료들이 득실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배들로선 퇴직 선배가 재직 중인 기관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취업 후 3년간 유관기관 재취업을 법으로 금지했다. 한국에서도 낙하산이 해소되는 듯싶었다. 이 기대는 문재인 정부 들어 산산 조각났다. 바른미래당이 문 정부 출범 이후 340개 공공기관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낙하산 인사의 수가 365명에 달했다. 야당에서 “매일 1명씩 낙하산을 투하했다”는 비판이 나올 만도 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게 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은 어디로 갔을까. 국민적 공분을 산 강원랜드 채용 비리를 비롯한 공공기관 부정부패의 근원이 바로 낙하산 인사 아니었나. 정권의 전리품처럼 내리꽂는 낙하산은 국민의 허리만 휘게 한다. 정권의 코드에 맞는 ‘캠코더’ 인사들로 공공기관을 채우는 것을 국민이 분노해야 하는 이유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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