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50> 흰금과 백금 ; 플래티늄

bindol 2022. 2. 9. 08:43

한 방에 몇 명의 학생이 있으면 차분한 강의를 할 수 있을까? 최대 몇 명까지가 적정선일까? 강의를 주업으로 하는 필자의 체험과 경험에 따르면 20명인 것 같다. 20명 이내의 스몰 클래스에선 수강생 한 명 한 명 모두의 눈을 맞추며 강의할 수 있다. 20명이 넘어가면 그리 하기 힘들어진다. 30명, 40명으로 갈수록 더욱 힘들다. 50명이 넘어가면 굉장히 힘들고 100명 가까이 되면 강연 아닌 강의는 불가능하다.

원자의 세계가 딱 그러하다. 원자핵 주변 전자가 20개 이내면 차분한 전형(典型)원소(Typical elements)다. 전자 갯수와 일치하는 원자번호 20번까지 원소들은 그야말로 전형적 원소들이다. 옥텟(Octet)이라는 8전자 원칙이 딱 들어 맞는다. 전자들이 s 오비탈, p 오비탈에 차곡차곡 채워진다. 예외가 없다. 중학교 수준의 화학은 여기까지 다룬다. 그런데 21번 스칸듐부터 복잡해진다. 전이(轉移)원소(transition elements)들이 나타난다. 바깥쪽 전자들이 d 오비탈로 전이되며 불완전하게 채워지기 때문이다. 원자번호 57번 란타넘부터는 f 오비탈에 더욱 불완전하게 채워진다. 원칙에 어긋나는 변칙이 발생한다. 예외가 있다.

이러한 변칙이 난무하는 전이원소들을 대표하는 원소는 백금이다. 이름부터 변칙이다. 단어 뜻 그대로라면 백금(白金)은 흰금인 화이트 골드(White Gold)다. 그러나 화이트 골드는 백금이 아니다. 황당하다. 화이트 골드는 골드에 다른 금속을 섞어 백금처럼 하얗게 보이도록 만든 합금이다. 화이트 골드의 본질은 원자번호 79번인 금(Au)이다. 반면에 백금(Platinum)은 원자번호 78번으로 본질이 백금(Pt)이다. 백금 이름부터 헷갈리는데 더욱 변칙적으로 헷갈리게 하는 것은 백금족 원소다. 백금은 10족에 속하는 원소이지만 백금족 원소는 8 9 10족 6개 원소들이다. 5주기 8족 44번 루테늄(Ru) 9족 45번 로듐(Rh) 10족 팔라듐(Pd), 6주기 8족 76번 오스뮴(Os) 9족 이리듐(Ir) 10족 플래티늄(Pt)이다. 전형원소들에선 주기율표상 세로로 같은 족 원소들끼리 비슷한 성질이다. 이에 반해 전이원소인 백금족 원소들은 8족 9족 10족 가로로 같은 주기 원소들끼리 비슷한 성질을 보이니 이 또한 변칙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이 변칙적 전이원소인 백금족 원소들은 흰금처럼 보이는 은백색 전이금속으로 금보다 희귀하다. 지구에 얼마 박혀있지 않다. 그래서 수요량 및 공급량에 따라 금보다 훨씬 비싸기도 하다. 그러한 이유에서일까? 대개 시상을 할 때 같은 11족 원소인 금 은 동 순으로 금상 은상 동상을 준다. 원자번호가 많은 금이 가장 높은 상이다. 그런데 대상은 무슨 원소를 빗대어 상을 줄까? 대개 백금인 플래티늄상이다. 백금족 원소들을 대표하는 백금은 원자번호가 78번으로 79번인 금보다 하나 적다. 그런데도 대상은 플래티늄상이니 이 또한 변칙이다. 세상엔 변칙이 원칙보다 많다.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 그 변칙이 이 세상을 이리저리 헷갈리게 돌린다. 전자가 20개 이상 원자는 그리도 복잡하다. 사람 나이도 20을 넘어서면 그렇다. 열 스물을 지나면 ㄹ 받침 나이로부터 서른부터 아흔까지 ㄴ 받침 나이로 전이된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그 때부터 변칙을 원칙으로 인정해야 하나? 그럴까?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