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10] 중국 공산당에 충성한 일본 귀족
사이온지 긴카즈(西園寺公一)는 일본 근현대사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이력의 소유자로 꼽히는 기이한 인물이다. 사이온지 가문은 공작(公爵)가에 해당하는 최고 귀족 가문이다. 총리와 국가 원로로 살았던 사이온지 긴모치(公望)는 정계의 최대 실력자였고, 가문의 영화(榮華)도 하늘을 찌를 듯했다. 긴카즈는 긴모치의 손자로 사이온지 가문의 적자(嫡子)였다.
그가 처음 세간을 놀라게 한 것은 1941년 소련 스파이 조르게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때였다. 가문의 후광으로 고노에 총리의 브레인으로 활동하던 그가 코민테른의 스파이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나자 일본인들은 아연실색한다. 종전 후 좌파 경향의 활동을 벌이던 그는 1957년 돌연 가족을 데리고 북경으로 이주한다. 일본 명문가 일원의 중국 이주에 큰 선전 가치를 부여한 중국 공산당은 장관급 대우를 하며 그의 중국 체재(滯在)를 반겼다.
사이온지는 그러한 예우에 보답이라도 하듯 중공의 선전 도구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수많은 아사자를 발생시킨 대약진운동에 대한 서방의 비판을 근거 없는 날조라고 거꾸로 비난하고, 그 자신이 문화대혁명으로 쫓겨나듯 일본으로 귀국했음에도 일본 대중을 상대로 문혁의 당위성을 옹호하는 등 중공의 대변자를 자처했다. 오죽했으면 일본 공산당이 그를 ‘특정 외국 세력에 맹종하는’ 인물로 비판하며 제명할 정도였다.
그는 문혁 당시 마오쩌둥과 장칭(江靑)을 예찬하고 자신의 은인인 저우언라이를 공격했지만, 마오 사후에는 문혁의 책임을 물어 재판에 회부된 장칭을 공격하는 등 철저하게 공산당 내 집권 세력에 영합하는 기회주의적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특이한 출신 때문에 중국에서 ‘적색 귀족’ 소리를 들었고, 중국 공산당은 지금도 그를 중일 관계의 개척자로 포장하여 선전에 활용하고 있다. 친중을 넘어 중국 공산당의 이익을 대변하는 영향력 있는 외국 인사를 포섭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오랜 외교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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