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09]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유학자
일본 최고 대학인 도쿄대학은 거슬러 올라가면 1856년 막부가 설립한 ‘번서조소(蕃書調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최초의 본격 서양 학문 연구·교육 기관으로 일컬어지는 번서조소 설립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은 고가 긴이치로(古賀謹一郎·1816~1884)라는 유학자였다. 고가씨는 본래 유(劉)씨로, 한고조 유방(劉邦)의 후예 출신 도래인(渡來人)이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긴이치로는 유서 깊은 유학자 가문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막부의 관학 기관인 창평학문소에 몸담은 정통 유학자였다.
그는 유학을 학업의 본령으로 삼으면서도 한역난서(漢譯蘭書)를 탐독하고 난학자들과 폭넓게 교류한 깨어있는 지식인이었다. 1855년 러시아와의 수교 협상에 참여하면서 격변하는 세계 정세를 현장에서 체험한 그는 양학(洋學)이 새로운 시대의 지식이 되어야 함을 확신한다. 그해 고가는 양학 연구기관 설립, 외국 영사관 설치, 연안 측량 허가 등 개명책(開明策)을 막부에 건의하였고, 개국을 지향하던 대로(大老) 아베 마사히로는 그에게 양학소(이듬해 번서조소로 개칭) 설립 임무를 부여한다.
초대 교장에 임명된 고가는 미쓰쿠리 겐포, 스기타 세이케이, 가와모토 고민, 데쓰카 리쓰조, 오무라 마쓰지로 등 전국 각지의 이름난 양학자를 초빙하여 교수진을 꾸리고, 네덜란드어·영어·프랑스어 등의 어학과 수학·정동학(精錬學·금속학)·기계학 등 서양 과학기술을 교과목으로 채택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한다. 번서조소는 이후 정치적 혼란 속에서 명칭이 바뀌면서도 막부 말기와 메이지 시대에 걸쳐 신지식 엘리트의 산실로 자리매김하였다.
시대 전환기에 신학문 기관의 산파역을 맡은 것이 정통 주자학을 공부한 유학자였다는 것은 당시 일본 지적 지형도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유학을 공부하건 양학을 공부하건 기존 지식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를 읽고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 학문의 본업이라는 지식인의 책무에 대한 자각과 지적 유연성이 그 바탕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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