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함정
입력 2022.02.25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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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중국에서 ‘사마천(司馬遷) 함정’이란 신조어가 화제다. 이집트의 중국 전문가인 나디아 헬미 베니수에프대 교수가 만들었다. 최근 유럽의 외교 전문지 ‘모던 디플로머시’에 기고한 ‘사마천 함정 대 투키디데스 함정’에서다. 헬미 교수는 만리장성에서 보이듯 중국은 방어적 국방정책을 따른다고 했다. 패권국과 신흥국이 충돌한다는 ‘투키디데스 함정’을 서방은 너무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대신 ‘타키투스 함정’을 경고했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였던 타키투스의 어록에서 나왔다. 신뢰상실의 위기다. 타키투스는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 거짓말쟁이로 전락한다. 진실을 말해도 거짓을 말해도, 좋은 일을 해도 나쁜 일을 해도 차이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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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아이
헬미 교수는 미·중 갈등을 ‘사마천 함정’이란 ‘내부 단결을 위한 외부의 적 만들기’로 설명했다. 중국 역사서 『사기(史記)』 저자가 살던 시대 한(漢) 제국과 흉노의 라이벌 관계를 분석한 결론이다. 영구적인 외부의 적을 만들어 포위함으로써 내부를 통합한다는 논리다. 중국은 ‘사마천 함정’의 내용을 반박했다. 시사평론가 옌모(雁默)는 외적을 만들어 내부 단결을 도모하는 건 미국식 전통이지 중국식 문화는 아니라고 중국 인터넷 매체 관찰자망에서 주장했다. 대신 ‘사마천 함정’은 인사(人事)와 지피지기(知彼知己)가 핵심이라고 했다.
근거는 사마천의 ‘흉노열전’ 결론이다. “한때의 권세를 얻기 위해 아첨하며 자신의 주장이 채택되도록 힘썼을 뿐, 편견에 사로잡혀 흉노와 한나라 정황은 고찰하지 못했다. 실제 장수들은 중국이 광대한 것만 믿고 호언장담했고, 황제 또한 이들의 말을 쫓아 정책을 결정했다. 큰 공을 세울 수 없었던 이유다.” 사마천은 위청(衛靑)·곽거병(霍去病) 등 장수의 큰소리만 믿고 무리한 전쟁을 감행한 한 무제를 에둘러 비판했다. “장군과 재상을 잘 선택해 임명하는 수밖에 없다”를 두 번 반복하면서다.
옌모는 바이든의 안보팀 인사를 한 무제의 용인술에 견줬다. “미숙한 설리번, 평범한 블링컨, 유명무실한 ‘인도·태평양 차르’ 캠벨을 등용해 중국을 상대로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과녁을 잃고 ‘사마천 함정’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한 제국은 결국 외부의 흉노가 아닌 내부의 적이 무너뜨렸다. 사마천은 편견 때문에 상대와 자신을 살피지 못하면 위태롭다고 강조했다. 30여년 이어온 탈냉전을 끝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따져보면 편견 탓이 크다. 함정이 참 많은 시대다. ‘사마천의 함정’에서 자유로운 세계 지도자의 도량이 절실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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