健康 常識

[김철중의 생로병사] 제 목소리 크게 들려 남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

bindol 2022. 3. 22. 07:13

[김철중의 생로병사] 제 목소리 크게 들려 남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

이 악물고 덜 먹어 다이어트했는데 귀 울림 증상 생겨 일상 고통
코 뒤쪽 지방 줄어 이관(耳管) 열리는 희귀 질환, 맞춤형 치료 필요
지름1㎜ 관이지만 중요한 역할… 무리하면 탈 나는 게 세상 이치

입력 2022.03.22 03:00
 
 

중견 기업서 인사 관리를 맡고 있는 40대 후반 최 부장은 “이 배로는 살 수 없다”며 다이어트를 열심히 했다. 코로나 사태로 활동량이 떨어져 허리둘레가 성큼 늘어난 것이 계기가 됐다. 죽어라고 걷고, 이 악물고 덜 먹었다. 80㎏ 하던 몸무게가 3개월 사이 70㎏로 내려왔다. 와이셔츠 목 단추도 잘 채워지고, 허리띠도 한 칸 동여매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귀가 울리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가 유난히 내 귀에 크게 들렸다. 마치 목욕탕에 있는 것처럼 주변 소리가 왕왕거렸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 서로 말하는 게 겹치면, 내 목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상대편 말이 들리지 않았다. 회의 시간 질의응답 과정에서 상대 말귀를 못 알아 듣는 일이 자꾸 생겼다. 일 잘한다는 최 부장이 살 빼고선 어리바리해졌다는 말이 나왔다.

/일러스트=이철원

귀 울림 증상을 해결하고자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진단은 이관(耳管) 개방증이다. 이관은 귀의 중간 부위인 중이(中耳)와 코 뒤쪽 비인두를 연결한 관이다. 중이에 생기는 찌꺼기를 배출하고, 중이와 외부 압력 차이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비행기가 하강할 때 귀가 아픈 이유는 귀 안과 대기압과의 차이 때문이다. 이때 침을 삼키면 이관이 0.5초간 열리면서 바깥 공기가 귀 안으로 들어가 양쪽 기압이 같아져 통증이 준다. 이관은 닫혀 있다가 필요할 때만 열려야 하는데, 최 부장의 이관은 항상 열려 있는 것이다.

왜 이관 개방증이 생겼을까. 원인은 급속한 다이어트였다. 이관이 닫히는 데는 주변 근육의 수축도 있지만, 코 뒤쪽 비인두에 분포한 지방 조직이 이관 입구를 눌러주는 힘도 기여한다. 짧은 기간에 살이 빠지면서, 그 지방이 줄면서 이관이 느슨해지고, 입구가 벌어진 것이다. 그러니 성대에서 나온 목소리가 바로 위쪽 열린 이관을 타고 귀로 들어가 고막을 때렸다.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귀로 돌아 들어가 고막에 또 전달된다. 내 목소리가 짧은 시차를 두고 엇박자로 두 번 들리니 웅웅거리고 왕왕거린다.

코로 숨을 쉴 때 공기가 비인두를 거쳐 기도로 흘러 들어가는데, 우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이관이 열린 상태가 되면, 그 공기 흐름이 귀로 전달되어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후훗~’ 하는 숨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보통 4초마다 숨을 쉬니, 귀에서 숨소리가 끊이질 않고 들린다. 심장 뛰는 소리는 안 들려야 하는데, 흥분하거나 부정맥이 있을 때 자기 심장 소리를 듣게 되고, 굉장한 불안감을 느낀다. 자기 숨소리가 들리는 것도 이와 유사하다. 뭔가를 삼키는 소리도 들린다니, 귀와 코를 연결하는 길이 3.5㎝, 내경 1㎜ 관이 제대로 작동 안 하는 상황이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한다.

 

이관 개방증은 급속한 다이어트가 아니더라도 목소리를 많이 쓰는 가수, 선생님, 학원강사 등에서 올 수 있다. 이관에는 끈적한 점액이 흘러 이관이 닫혀 있게 하는 기능을 하는데, 목소리를 많이 쓰면 이관이 말라서 열린다. 트로트 가수 은가은은 무리한 다이어트 후 자기 목소리에 시달렸다고 한다. 일본의 유명 가수 나카시마 미카도 귀 울림으로 박자를 놓치게 되자, 한때 가수 생활을 접었다. 이관은 누워 있으면 중력의 힘으로 닫히기에, 환자들 중에는 생업을 포기하고 하루 종일 누워 지내는 사람도 있다.

 

전국의 이관 개방증 환자는 병원을 돌고 돌아, 의사를 묻고 물어 부산대병원 이비인후과 공수근 교수에게 찾아간다. 그에게 이관된 환자가 3000여 명에 이른다. 공 교수는 환자들이 통역까지 데리고 일본으로 치료받으러 가는 걸 보고, 얼마나 괴로우면 그러나 싶어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는 귀 밖에서 고막을 임시로 뚫고 들어가 이관에 가느다란 관을 넣어 적절한 닫힘을 유도하는 수술법을 개발해 치료 효과를 내고 있다. 이관을 과도하게 막으면, 되레 폐쇄가 올 수 있으니 맞춤형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여 귀울림이 멎은 환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린단다. 별건 아닌 것 같은데 예민하게 군다는 힐난을 견딘 희귀질환자의 설움이리라.

 

사람 몸, 어디 하나 간단한 게 없다. 인구 1%에서 이관이 막히거나 열리는 문제가 생긴다. 막혀서 귀가 먹먹한 사람은 껌을 씹어서 이관을 열리게 하지만, 개방증은 뚜렷한 생활 요법이 없다. 다시 살을 찌워도 이관 주변에 지방이 재축적되지 않을 수 있다니, 살 빼기는 설계도 있는 리모델링이 아닌가 보다. 이관 개방증은 세상의 이치와 같다. 무리하면 탈 나고, 자기 목소리가 크게 들리면, 남의 목소리가 안 들리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