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20] 반려식물 시대의 파테크
팬데믹이 끝나 가나 보다. 정말 끝일 거라 믿고 싶다. 시간이 더 지나면, 그래서 좀 떨어져서 돌아볼 수 있게 되면, 그동안 우리가 겪은 일을 지금보다 잘 이해할지 궁금하다. 지난 2~3년간 일어난 크고 작은 변화의 의미를 알아내려면 시간의 거리가 필요하다. 지금은 무엇을 기억할지를 정해야 할 때다. 그중 하나. 나는 이전보다 집에서 휠씬 많은 시간을 보냈고,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늘렸다. 실패를 반복하던 식물 키우기에 공을 들여 어느 정도 성과를 보았고, 반려식물이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애정을 쏟게 되었다. 음식을 직접 조리하는 일도 늘었다. “파를 직접 키워 먹어서 재테크를 한다”는 ‘파테크’도 해봤다.
김영수의 ‘장場을 보다’ 연작(2004~2007)으로 구성된 동명 작품집 표지에는 전라남도 구례의 장터에서 찍은 파 사진이 실렸다. 세월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오래된 쟁반 위엔 정갈하게 손질한 파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작가는 한국 광고 시장의 본격 성장기인 1980년대부터 제품과 음식 전문 광고 사진가로 활동하였는데, 단순해 보이는 이 사진 한 장에서도 그 이력이 응축되어 힘을 발한다. 인공 조명을 사용하는 스튜디오에서 대형 카메라로 비싼 물건이나 최고 음식을 촬영하던 작가는 장터의 평범한 식재료와 질박한 소품을 스스로에게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바라보았다.
광고 사진가가 찍었으나 아무도 의뢰하지 않은 사진은 세월을 뚫고 당당하게 살아 남았다. 장터에 진열된 물건 모양새를 그대로 유지하였다는 이 사진의 스타일링은 그 어떤 화려한 음식의 담음새에도 뒤지지 않는다. 시간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니, 닳고 찌그러진 쟁반에서도 어느새 사라진 장터 풍경에 대한 아련함이 묻어난다. 유행이 지나면 어쩐지 초라해지는 패션 아이템과는 달리 이제 반려식물 지위까지 얻게 된 ‘파’가 생생하게 빛을 발한다. 사진은 그대로인데 우리의 눈과 마음은 계속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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