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

푸틴과 시진핑의 ‘브로맨스’를 권력 집중 비판했던 덩샤오핑이 본다면

bindol 2022. 5. 2. 04:50

푸틴과 시진핑의 ‘브로맨스’를 권력 집중 비판했던 덩샤오핑이 본다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입력 2022.04.02 09:00
 
 
 
 
 

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25회>

<대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2022년 3월. 사진/ Mattis Liu>

우크라이나 침공 20일 전 중·러 “두 나라의 협력엔 금지된 영역이 없다” 공동 성명

지난 2월 24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한 후, 중국 시진핑 주석의 행보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정황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중국과의 치밀한 사전 조율 하에서 일어난 군사도발로 보이기 때문이다. 2022년 2월 4일, 푸틴과 시진핑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12장이 넘는 장문의 중·러 공동성명서에는 “평화, 발전, 평등, 정의, 민주주의와 자유” 등 아름다운 말이 가득하지만, 중·러 양국의 반민주적, 반자유적, 반인권적 독재를 정당화하는 독소 조항이 곳곳에 지뢰처럼 깔려 있다.

가령 “각 나라는 그 나라 고유의 정치·사회적 체제에 가장 잘 맞는 민주주의의 실행 방법과 형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구절이나 “모든 국가는 특유의 민족적 특성, 역사, 문화, 사회 체제, 사회·경제적 발전 정도를 갖기에 인권의 보편성은 각 나라가 처한 실제 상황의 프리즘을 통해서 보아야 한다”는 구절 등은 닳디 닳은 권위주의 정권의 독재 합리화 논리다. 평화, 발전, 협력, 부유, 인류 공동 운동체 등 중국공산당의 상투적인 선전 구호가 넘쳐나지만, 핵심을 파고들면 그 밑바탕엔 중·러 양국의 군사 패권주의가 깔려 있다.

공동성명서에서 러시아는 대만이 중국의 영토임을 분명히 인정하고, 중국은 러시아와 더불어서 나토의 확장 중단을 촉구한다. 국명이 명기되지 않아도 문맥상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있음이 번연히 드러난다. 게다가 이례적으로 “중·러 두 나라의 우정엔 한계가 없으며, 협력에는 금지된 영역이 없다”는 문구까지 들어가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예정되어 있었고, 중국은 러시아를 뒤에서 밀어주기로 합의한 정황이 읽힌다. 바로 그날부터 16일에 걸쳐 베이징 올림픽이 치러졌고, 나흘 후인 2월 24일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했다.

<2022년 2월 4일 베이징에서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 사진/ Sputnik/Aleksey Druzhinin/Kremlin via Reuters>

푸틴 시진핑 공통점...영토 야욕 숨기지않는 민족주의자, 종신집권 길 닦은 절대군주

푸틴과 시진핑은 공통점이 많다. 첫째, 푸틴은 1952년 10월생이고, 시진핑은 1953년 6월생으로 불과 8개월 차이로 세상에 태어나서 냉전 시기 각각 소련과 중국에서 유년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둘째, 두 사람은 전 세계에서 공산권이 줄도산하던 1980년-90년대 소련과 중국의 정부에서 정계에 입문하고, 장시간에 걸친 정무 경험을 쌓아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 올랐다. 셋째, 두 사람 모두 영토 야욕을 숨기지 않는 강렬한 민족주의자들로 군사적 위기를 고조시켜 대내적 지배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넷째, 두 사람 모두 재임 중 헌법 개정으로 임기 제한 규정을 없애고 종신 집권의 길을 닦은 반민주적 절대군주다. 푸틴은 제정러시아 차르의 권위, 시진핑은 전통 시대 중국 황제의 지위를 연장하는 시대착오를 보인다.

또한 두 사람은 20세기 공산주의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긍정한다. 푸틴은 공개적으로 레닌을 칭송하며, 시진핑은 공공연히 마오쩌둥 사상을 되살리고 있다. 단적인 예로 지난 2월 21일 푸틴은 “레닌이 우크라이나의 설계자”라 주장하며, 레닌을 기리는 기념물들을 파괴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감사할 줄 모르는 후손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탈(脫)공산화를 원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향해서 “진짜 탈공산화가 어떤 의미인지 보여주겠다고 위협했다. 냉전 시대 구소련을 향한 그의 동경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마찬가지로 시진핑 역시 마오쩌둥 시대의 어두운 기억을 조직적으로 삭제하고 마오쩌둥 사상을 되살려서 중국인들을 결속하는 이념적 구심으로 삼으려 한다.

요컨대 푸틴과 시진핑은 공히 구소련 붕괴 이후 등장한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도전하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신냉전 시대의 전제군주(專制君主, autocrat)들이다.

대만과 통일 부르짖는 시진핑, 과연 공격할까? 러의 우크라 침공 전개를 주시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는 푸틴과의 “브로맨스”에 빠져 있던 시진핑을 향해 중국의 외교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2008년 러시아가 조지아를 침공했을 때 명백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지지하지 않았다. 그렇게 러시아와의 적정 거리를 유지해오던 중국이 지난 2월 러시아와의 “영원한 우정”을 맹세했다. 러시아를 끌어안은 시진핑의 근본 동기는 그가 추진해 온 “하나의 중국” 정책으로 보인다.

지난 9년의 세월 시진핑 주석은 틈만 나면 대만과의 통일을 공공연히 부르짖어 왔다. 2020년 4월에는 중공 중앙은 대만을 향해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하지 말라(勿謂言之不豫)!”는 협박성 발언까지 했다. 마오쩌둥이 1940년 1월 “신민주주의론”이란 논설에서 썼던 표현인데, 중국외교사에선 선전포고에 준하는 엄중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1962년 중·인 국경분쟁, 1969년 중·소 국경분쟁, 1979년 중·월 전쟁 때, <<인민일보>>가 두 차례, <<신화사>>가 한 차례 바로 이 표현을 쓴 바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둘러싸고 국제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 격렬한 토론이 일어나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제제재가 시진핑의 모험주의적 행동을 막는 억지력을 발휘한다는 분석도 있지만, 중국은 서방식 경제제재의 허실을 면밀하게 따져서 대만 침공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는 전망도 있다. 다만 시진핑이 제3기로 들어서는 2022년 말까지는 중국의 대만 침공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문제는 종신 집권에 나선 시진핑으로선 장기 집권의 거대명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대중적 지지를 확충하기 위해서 시진핑은 얼마든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외치며 대만 침공을 감행할 수도 있다.

<2016년 대만 타이베이의 반중시위. “대만은 대만이다, 중국이 아니다!” https://www.asianwarrior.com/2018/07/taiwan-the-question-of-one-china-part-ii.html>

결국 오늘날 중국의 가장 큰 위험은 부조리한 정치 시스템에 있다. 푸틴의 군사 모험이 증명하듯 권력 집중은 일인(一人) 지배로 귀결되며, 견제받지 않는 일인 지배는 파멸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1980년 개혁개방을 주도했던 덩샤오핑은 권력 집중의 위험과 일인 지배의 모순을 냉철히 꿰뚫어 보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덩샤오핑 “권력 집중은 정권 부패와 실패의 원인... 그래서 참혹한 문혁 겪었다”

덩샤오핑은 1979년 3월 민주장(民主牆) 운동을 진압하고 웨이징성(魏京生, 1950- ) 등 자유주의 민주투사들을 구속했지만, 중국공산당이 다시금 마오쩌둥 시대의 전제적 1인 지배로 복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1980년 8월 18일, 덩샤오핑은 중공 중앙 정치국 확대 회의에서 “당과 국가의 영도제도(지도 체제) 개혁”이라는 제목의 기념비적 강화(講話)를 했다. 이 강화문에는 파격적이고도 근본적인 정치 개혁의 청사진이 담겨 있었다. 강화문에서 덩샤오핑은 중공 중앙의 핵심 요직에서 구시대의 인물들을 밀어내고 다수의 신진들로 대체하는 대규모 인사개혁을 감행한 후,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권력은 과도하게 집중되어선 아니 된다.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면, 사회주의적 민주제도와 당의 민주집중제의 실행과 사회주의 건설의 발전에 저해가 되며, 집체적 지혜의 발휘를 막을뿐더러 일개인의 전횡과 독단을 조장하고, 집단적 지도력을 파괴한다. 또한 새로운 조건 하에서 관료주의를 일으키는 중요 원인이 된다.”

<1979년 백악관에서 카터 대통령과 닉슨 전 대통령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덩샤오핑의 모습. https://www.nixonfoundation.org/2017/07/rn-deng-personal-letter-solely-china/>

마오쩌둥 시대의 어둠을 직접 몸으로 경험한 덩샤오핑은 “권력의 과도한 집중”을 정권 부패와 정권 실패의 근본 원인이라 제시했다. 나아가 덩샤오핑은 “우리가 권력 집중의 폐해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10년간 참혹한 문혁을 겪어야만 했다”고 술회했다. 또한 그는 소수가 중앙 권력을 독점하면서 생겨나는 겸직(兼職)과 부직(副職)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둘째, 겸직, 부직이 지나치게 많아서는 아니 된다. 일개인의 지식, 경험, 정력은 한계가 있다. 좌우상하 겸직이 너무 많게 되면 어떤 일이든 깊이 들어가기 어렵다. 특히 더 많은 동지가 더 적합한 곳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부직(副職)이 과도하게 많아지면, 효율성이 떨어지고, 관료주의와 형식주의가 퍼지기 쉽다.”

나아가 덩샤오핑은 당정(黨政) 분리까지 주장한다. “의행(議行, 의회와 행정부) 합일”을 강조하는 2020년대 중국공산당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권력분립의 논리다.

“셋째, 당(黨)과 정(政)이 구분되지 않고, 당이 정을 대신하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중앙의 일부 영도 동지들은 정부의 직무를 겸임하지 않기에 당을 관리하고, 나아가 노선, 방침, 정책을 관장하는 일에 힘을 모을 수 있다.”

덩샤오핑의 이 세 가지 주장은 이후 중공 중앙의 집단지도 체제를 형성하는 중요한 원리로 작동했다. 덩샤오핑은 “영도 체제의 일원화”는 결국 “1인 지배”로 이어져서 “민주적 절차, 집단지도, 민주집중제, 분업과 책임” 등의 원리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했다. 당내 보수파의 반발로 덩샤오핑의 이 강화문은 1983년까지 공표되지 못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 주요 내용은 입을 타고 전해져서 1980년부터 본격적인 정치 민주화 논쟁을 일으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42년 전 덩샤오핑의 강화문을 읽다 보면, 마치 그가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와서 2022년 현재 중국의 현실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는 듯하다. 덩샤오핑과 정반대로 시진핑은 오늘도 공산당의 전일적(全一的) 영도력이 치국(治國)의 요체라고 부르짖고 있다. 2019년 2월 중공 기관지 “구시(求是)”에 실린 강화문에서 시진핑은 “당의 영도력이 사회주의 법치의 가장 근본적인 보증”이라며 중국은 절대로 “헌정(憲政)”, “삼권분립”, “사법 독립”의 길을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개혁개방 40년이 지나 시진핑은 권력 독점을 비판했던 덩샤오핑의 유훈(遺訓)을 정면으로 배반했다. 중국공산당의 역사에서 시진핑의 종신 집권은 일시적 권력 일탈인가, 반영구적 궤도이탈인가? 견제받지 않는 시진핑의 권력은 중국을 넘어 전 세계에 과연 어떤 결과를 몰고 올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