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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칼럼] 왜, 선지선각자(先知先覺者)적 리더가 필요한가?

bindol 2022. 5. 17. 09:07

 경기데일리 칼럼

 

국민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부지불각자(不知不覺子)는 나라의 리더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남보다 먼저 아는 사람을 선지자(先知者)라고 한다남을 인도하는 사람을 선도자(先導者)라고 한다남보다 먼저 보는 사람을 선견자(先見者)라고 한다이들이 있기에 인류문화는 쉬지 않고 발전할 수 있었다.

중국 근대화 운동의 창시자요, 선구자인 손문(孫文)은 사람의 지각(知覺)을 기준으로 크게 세 부류로 나누었다.
 
 첫 번째 부류가 선지선각자(先知先覺者). 선지자는 언제나 다른 사람보다 먼저 생각하고, 다른 사람보다 먼저 깨닫고, 다른 사람보다 먼저 행동한다. 우리보다도 한 수 아래요, 후진국이라는 일본은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선지선각자가 있었기에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 나카츠에서 1835 1 10일 하급 무사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1860년대부터 개항과 개화를 주장하였는가 하면 자유주의, 공리주의적인 가치관의 유용성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사상을 중심으로 막부 철폐와 구습 타파 등을 주장했는가 하면 부국강병론과 국가 중심의 평등론을 역설하였다. 당시 일본은 서양 문물을 배척하는 인물들이 많았으나 그는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학문과 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1862년 음력 1 1(1 30) 막부(幕府)수행원에 임명되었다. 이후 3차례에 걸쳐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네덜란드, 독일, 러시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을 두루 여행하였다. 그는 해외를 여행하면서 자신이 목격한 열차, 기관차, 기계 등 새로운 문물을 일본에 소개하고 이 같은 문물 도입에 앞장섰다.

 
당시 프랑스는 징병제였는데 영국은 징병제가 아니었다. 도대체 왜 나라마다 제도가 다른 것일까? 그는 이점을 궁금해 했다. 선거를 치르지 않은 나라에서 선거를 치르는 나라에 왔기에 선거법은 아예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법률에 기초해서 선거를 실행하는지, 국회는 어떤 관공서인지 알지 못해서 이를 이해하고자 묻고 또 물었다. 그의 질문을 받은 상대방은 너무 당연하고 기초적인 것을 묻기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더 황당한 것은 당파가 둘로 나뉘어 태평천하에서도 정치적인 싸움질을 해댄다는 점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적인 상대방과 함께 술 마시고 밥을 먹는다. 일본에서라면 적은 반드시 죽여야 했다. 그렇기에 그런 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점을 이해하기 위하여 닷새고 열흘이고 묻고 연구하고 체험하면서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이러한 문물을 목도하고 경험한 후 귀국하여 자신의 견문을 알리면서 일본도 이런 나라처럼 되려면 개항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그는 메이지 유신 기간 중 메이지 황제로부터 입각 제의를 받았으나 사양했다. 대신 개화 청년 양성을 위하여 가장 먼저 학문 연구와 계몽사상 교육과 토론 교육 및 언론 활동 등 정부 밖에서 메이지 유신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는데 기여하는 한편 개화 청년 양성에 주력하였다.
 
일본은 1871년 문부성을 설치하였는가 하면 이듬해 프랑스 제도를 모방한 학제를 공포하였다. 그에 따라 전국에 2만여 소학교를 설립하였다. 서구적인 전문 교육을 시키기 위하여 1877년에 도쿄대학을 설립하였다. 늘어나는 소학교의 교육을 담당할 교사를 양성하기 위하여 사범학교와 여자학교, 산업학교도 설립하였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막부보다도 앞서 1868년에 게이오(慶應義塾)대학을 세워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선지자적 혜안과 선구자적 활동에 힘입어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부류가 후지후각자(後知後覺者). 후지자는 경험한 다음에야 생각하고 깨닫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일수록 스스로 지도자로 자처한다. 선거철만 되면 수많은 정치지망생이 있지만 그들의 능력이나 됨됨이를 따져보면 빈틈투성이요, 과오를 수도 없이 저질렀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선지자의 이상에 동조하지 않고 비평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선지선각자의 계획에 대하여 사상이 불철저하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이 너무 높아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핑계로 발목을 잡는다.
 
지구는 태양의 둘레를 도는 공이다.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가 없을 뿐이다. 그래서 중세까지만 해도 지구가 자전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비롯한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天動說)을 믿었다.
 
하지만, 사실은 지구가 자전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지해 있는 우주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지구는 태양의 둘레를 돈다는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한 갈릴레이는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태양이 하늘의 중심이며 부동이다"라는 천동설(天動說)을 따를 것을 강요받았다.
 
 그는 살아남기 위하여 지동설을 포기하는 서약에 서명해야 했다. 선지자(先知者) 갈릴레이는 어쩔 수 없이 자기의 신념이자 진리를 포기해야만 했다. 지동설은 철학적으로 매우 우매한 주장이요, 신학적으로 이단(異端)이라는 주장에 동조 아닌 동조를 해야 했다. 그는 1616 2 26 "태양이 하늘의 중심이며 부동이다"라는 지동설을 포기하고야 풀려났다.
 
하지만 그는 풀려나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하지만 갈릴레이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선지자로서 온갖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만큼 먼저 아는 사람, 남보다 앞장서서 남을 인도하는 사람, 세상을 한발 앞서 보는 사람은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그와는 달리 우리는 그런 선지선각자가 있었기에 발전하는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부류가 부지불각자(不知不覺子). 부지자는 경험하기 전에도 모르고 경험한 후에도 모르는 우매한 사람이다. 최근의 사례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들 수 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인류 역사에서 큰 실책이요, 오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세계의 흐름과 과학적 사실마저 외면한 푸틴은 옛 소련의 위상을 되찾고자 무력으로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겠다는 야심이 이성을 앞지르고 말았다. 그의 반지성적 행동은 러시아의 젊은이를 총알받이로 내몰았고, 나라를 고립시키고 있다. 푸틴 같은 부지불각자는 전쟁의 피해와 국력의 소모를 미리 예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경험하고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돌아온 것은 러시아 국민 모두를 패자로 만들고 있다. 이래서 부지불각자(不知不覺子)는 절대로 나라의 리더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리더가 되려면 지적인 성찰이 필요하고 반지성의 틀을 깰 수 있는 선지선각자(先知先覺者)적 혜안을 가진 사람 이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