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탁
서정민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
“사랑으론 안 돼, 날 추앙해요.”
JTBC 화제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여주인공의 대사다. 추앙(推仰)은 ‘높이 받들어 우러러봄’이라는 뜻이다. 그저 그런 평범하고 가벼운 사랑으론 안 되니 나를 높이 받들라…당황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여운이 남는다.
요즘 SNS에선 이렇게 ‘심쿵’한 대사나 장면, 또는 하고 싶은 말을 게시할 때 ‘드르륵 탁’이라는 신조어를 무한반복한다. “사랑으론 안 돼, 날 추앙해요. 드르륵 탁. 사랑으론 안 돼, 날 추앙해요. 드르륵 탁. 사랑으론 안 돼, 날 추앙해요. 드르륵 탁.” 이런 식이다.
빈티지 오디오 카세트. 사진 인터넷 캡처.
‘드르륵 탁’은 사물의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인데, 과연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놀랍게도 카세트테이프를 되감는 소리다. 카세트 플레이어에 테이프를 넣고 ‘되감기’ 버튼을 누르면 ‘드르륵’ 소리가 나고, 원하는 음원 위치에 도달했을 때 재생 버튼을 누르면 ‘탁’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노래가 흘러나온다. 소싯적 음악 꽤나 듣던 중년세대는 익숙한 소리겠지만, CD로도 음악을 안 듣는 MZ세대가 카세트테이프를 어떻게 알고 이런 신조어를 만들어냈을까.
그런데 의외로 MZ세대는 LP나 카세트테이프에 익숙하다. BTS는 2020년 ‘다이너마이트’ 음반을 낼 때 LP와 카세트테이프를 따로 제작·판매했다. 추억 속의 워크맨·마이마이 등은 요즘 중고 시장에서 인기다.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 1979년 영국 밴드 버글스는 이렇게 노래했지만, 그 예견은 틀렸다. 낡은 듯 보이는 아날로그 문화는 언제든 새로움으로 부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