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33> 성찰하는 진중한 삶 당부하는 극근선사

bindol 2022. 6. 1. 05:32

진중하고 진중하시라(珍重珍重·진중진중)

 

아무 것도 해놓은 게 없으니(已徹無功·이철무공)/ 게송을 남길 필요가 없네.(不必留頌·불필류송)/ 오직 인연 따라 살 뿐이니(聊爾應緣·요이응연)/ 진중하고 진중하시라(珍重珍重·진중진중).

송나라 극근(克勤·1063~1135) 선사의 임종게이다. 그는 임제종(臨濟宗)의 제11조(祖)이다. 남송의 고종은 극근 선사를 존경하여 ‘원오(圜悟)’라는 호를 내려주었다. 그가 활동하던 때 북송의 휘종은 그에게 ‘불과(佛果)’라는 호를 주었다. 입적한 뒤에는 ‘진각국사(眞覺國師)’라는 시호를 받았다. ‘간화선(看話禪)’으로 대변되는 선승 대혜종고가 그의 제자다.

이처럼 대단한 선승인데도 제자들에게 남긴 임종게는 소박하다. 인연 따라 진중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송나라 때 고승 오조법연(五祖法演)에게는 뛰어난 세 제자가 있었다. 오조법연이 세 제자와 함께 밤길을 걷는데 들고 있던 등불이 꺼져버렸다. 그러자 오조법연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세 제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극근은 “발밑을 살펴보아야 합니다(看脚下)”고 말했다. 참으로 단순한 대답이지만, 이 말에는 수행자로서 늘 자신을 성찰하며 살겠다는 삶의 태도가 담겨 있는 것이었다. 스승은 이 말을 듣고 극근을후계자로 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극근선사를 이야기 할 때는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과 관련을 시킨다. 사찰 법당 섬돌 위에 이 글이 적혀 있는 걸 종종 본다. 자신의 발밑을 잘 살펴보라는 뜻이다. 법당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으라는 의미다. 신발 벗어놓은 걸 보면 평소 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이를 마음공부라 한다.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上求菩提),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下化衆生)’는 서원(誓願)을 세우고 출가한 수행자가 평생의 지침으로 삼는 경구이기도 하다.

사람이 죽을 때 평생 모은 돈은 하나도 못 가져가지만, 지은 업(業)만은 가져간다고 한다. 악업을 쌓으며 살고 있는지, 선업을 쌓으며 사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래서 극근선사는 열반하면서 위의 게를 통해 사람들은 어떤 인연으로 살고 있는지 묻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삶을 진중하게 살지 않을 수 없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