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31> 10년간 유랑하며 지은 고려시대 임춘의 시

bindol 2022. 6. 1. 05:26

나루 길은 멀어 뗏목으로 이르기 어렵고

 

- 問津路遠槎難到·문진로원사난도



얼굴에 먼지 가득 십년간 기구한 신세(十載崎嶇面撲埃·십재기구면박애)/ 오랫동안 어린 조물주의 시기를 받았네.(長遣造物小兒猜·장견조물소아채)/ 나루 길은 멀어 뗏목으로 이르기 어렵고(問津路遠槎難到·문진로원사난도)/ 약을 달이는 일 늦어 솥은 열지 못했네.(燒藥功遲鼎不開·소약공지정불개)/ 과거는 아직도 나은의 한 사라지지 않았고(科第未消羅隱恨·과제미소나은한)/ 이소에 부질없이 굴원의 설움을 부쳤다.(離騷空寄屈平哀·이소공기굴평애)/ 양양이 스스로 지기가 없었던 게지(襄陽自是無知己·양양자시무지기)/ 명주가 언제 일찍이 재주 없다 버리셨는가?(明主何曾棄不才·명주하증엽부재)

고려 중·후기의 문인 임춘(林椿)의 시 ‘차우인운’(次友人韻·벗의 운을 차운하여)으로, 그의 문집인 서하집(西河集)에 있다. 임춘이 20세를 전후한 1170년(의종 24)에 무신난이 일어나 그의 집안은 큰 화를 당했다. 개경에서 5년 정도 숨어 지내다 7년여 유락(流落)생활을 했다. 이 무렵에 위 시를 지은 듯하다. 다시 경기도 장단으로 이주해 곤궁 속에서 지내다 30대 후반에 사망했다. 무신난 뒤의 고난은 자신의 능력 부재가 아니라 조물주가 그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운명을 만나지 못했기에 멀리 있는 나루터에 다다를 수 없고, 선단(仙丹)은 아직 익지 않아서 솥을 열 수가 없다. 현실에 대한 욕망을 버릴 수 없어 과거를 생각하고 있다. 자신은 재주가 있으니 밝은 임금을 만나면 재주를 써 주리라 생각한다.

5행 ‘나은(羅隱)’은 여러 번 과거에 응했으나 합격 못한 당나라 말기 시인을 말한다. 6행 ‘이소’는 굴원이 초나라의 종실과 대부(大夫)의 참소 탓에 쫓겨나 근심하고 시름하여 지은 ‘초사’(楚辭)이다.

7, 8행은 다음 고사를 끌어온 것이다. ‘양양(襄陽)’은 오언시에 능했던 당나라 시인 맹호연이다. 맹호연이 당나라 수도 장안에 갔을 때 왕유(王維)가 내서(內暑)에 숙직하면서 그를 불러 놀았다. 현종(玄宗)이 갑자기 나오자 맹호연이 상 밑에 숨었다. 현종이 맹호연을 불러내 시를 외우라 했다. 맹호연은 “재주가 없으니 밝은 임금이 버리시고, 병이 많으니 친구도 성겨지누나(不才明主棄, 多病故人蔬)”라는 구를 외웠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