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63> 조선 전기 이안유가 세 물건을 벗으로 삼은 뜻

bindol 2022. 6. 2. 05:42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63> 조선 전기 이안유가 세 물건을 벗으로 삼은 뜻

물건을 벗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多以物爲友者矣·다이물위우자의)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기해년(1419년) 가을, (벗 이안유가) 벼슬에서 물러나 남쪽으로 돌아와 영천의 서파리에 살면서 스스로 호를 서파삼우라 했다. 삼우는 부싯돌, 뿔잔, 쇠칼이다. … 나는 벗이라는 것은 그 덕을 벗으로 삼는 것이라 생각한다. 참으로 벗으로 삼을 만한 덕이 있다면 사람과 물건 모두 벗으로 삼을 수 있다. 그래서 옛사람은 물건을 벗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歲己亥秋, 乞退南還, 居永之西坡里, 自號曰西坡三友. 三友者, 陽隧也, 角觥也, 鐵刀也. … 余惟友也者, 友其德也. 苟有可友之德, 則人與物, 皆可以爲友也. 故古之人, 多以物爲友者矣.(세기해추, 걸퇴남환. 거영지서파리, 자호왈서파삼우. 삼우자, 양수야, 각굉야, 철도야. … 여유우야자, 우기덕야. 구유가우지덕, 즉인여물, 개가이위우야. 고고지인, 다이물위우자의)

위 문장은 유방선(柳方善·1388~1443)의 글 ‘西坡三友說(서파삼우설)’로 ‘동문선(東文選)’ 권98에 수록돼 있다. 부친 유기(柳沂)가 1409년 민무구(閔無咎)의 옥사에 연루돼 그 역시 오랫동안 유배와 금고에 시달렸다. 유방선이 경북 영천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이안유(李安柔)와 교유했다. 이안유는 1405년 문과에 급제해 여러 벼슬을 역임했지만 세종의 눈 밖에 나 고난을 겪었다. 실의에 빠진 그는 사람보다 물건을 벗으로 삼았다. 위에는 생략됐지만 유방선은 삼우설의 의미를 적어놓았다. 부싯돌로 불을 얻어 마음의 덕을 밝히고 세상을 밝히고, 뿔잔은 맑은 술이든 탁한 술이든 다 담아내는 도량이 있다. 칼은 예리함으로 고기를 잘 썰어서 백성에게 나누어 주는 것처럼 공평하고 그 예리함을 정치에 이용하면 사건을 정확하게 판결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유방선은 안으로 자신을 수양하는 방법과 밖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가 이 세 가지 물건에 있다고 했다. 물건을 벗으로 삼은 이유는 이것들로 자신의 배나 채우려는데 있는 게 아니라, 선비로서의 큰 뜻을 담았다는 것이다. 당나라 백거이는 시와 술과 거문고를 삼우(三友)로 삼았고, 송나라 증단백(曾端伯)은 아홉 가지 꽃에 술을 합하여 십우(十友)로 삼기도 했다. 독자들께서는 어떤 물건들을 벗으로 삼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