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60> 이역에서 유배돼 봄날 부모님을 그리며 시를 읊은 정총
부모님 생각에 날마다 옷 적시지 않는 날 없네(思親無日不霑衣·사친무일불점의)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복사꽃 다 지고 버들 꽃 날리고(桃花落盡柳花飛·도화락진류화비)/ 제비가 돌아오기 시작해도 객은 못 가네.(燕子初來客未歸·연자초래객미귀)/ 금릉을 아름다운 곳이라 그 누가 말했던가(誰道金陵佳麗地·수도금릉가려지)/ 부모님 생각에 날마다 옷 적시지 않는 날 없네.(思親無日不霑衣·사친무일불점의)
고려 말~조선 초 활동한 문신인 복재(復齋) 정총(鄭摠·1358~1397)의 시 ‘金陵卽事’(금릉즉사·금릉에서 짓다)로, 그의 문집인 ‘복재집(復齋集)’에 수록돼 있다. 봄날에 먼 이국땅에서 부모님을 그리며 읊은 작품이다.
정총이 위 시를 지은 사연이 있다. 그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정추(鄭樞·1333~1382)의 아들로, 조선 개국공신 정탁(鄭擢)의 형이다. 아버지 정추는 부산과 관련이 있다. 그는 고려 후기에 좌천돼 동래현령을 지냈다. 정추는 동래 여러 곳을 돌아보고 ‘동래 회고’라는 연작시를 남겼다. 여기서 해운대·겸효대·소하정·정과정 등을 소재로 해 여러 이야기를 작품에 담았다.
정총은 1376년(우왕 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에 올라 정당문학에 이르렀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 일등공신이 되고 서원군에 피봉됐다. 정도전과 함께 ‘고려사(高麗史)’를 편찬했는데 그때의 표전(表箋·임금께 올리는 글인 표문과 전문)에는 그의 글씨가 많다. 중국에 보낸 표전문(表箋文)도 대부분 그가 지었다.
정총은 1395년(태조 4) 11월에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표전의 표현이 무례하다 하여 억류됐다. 위 시는 이때 지었다. 이역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았다. 복사꽃이 지고 제비가 돌아와도 그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 금릉 땅이 아름답다고들 하지만 그에게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식 걱정에 먹지도 자지도 못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면 답답하기 이를 데 없고,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이 흐른다. 결국 그는 현재의 중국 운남성 대리시로 추정되는 대리위(大理衛)로 유배돼 가는 도중 사망했다.
정추의 ‘동래회고’ 시를 읽다 그의 아들 정총이 봄날 이국에서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읊은 시가 생각나 소재로 삼았다. 정추의 부산 관련 글은 다음 기회에 써먹을 참이다.
고려 말~조선 초 활동한 문신인 복재(復齋) 정총(鄭摠·1358~1397)의 시 ‘金陵卽事’(금릉즉사·금릉에서 짓다)로, 그의 문집인 ‘복재집(復齋集)’에 수록돼 있다. 봄날에 먼 이국땅에서 부모님을 그리며 읊은 작품이다.
정총이 위 시를 지은 사연이 있다. 그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정추(鄭樞·1333~1382)의 아들로, 조선 개국공신 정탁(鄭擢)의 형이다. 아버지 정추는 부산과 관련이 있다. 그는 고려 후기에 좌천돼 동래현령을 지냈다. 정추는 동래 여러 곳을 돌아보고 ‘동래 회고’라는 연작시를 남겼다. 여기서 해운대·겸효대·소하정·정과정 등을 소재로 해 여러 이야기를 작품에 담았다.
정총은 1376년(우왕 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에 올라 정당문학에 이르렀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 일등공신이 되고 서원군에 피봉됐다. 정도전과 함께 ‘고려사(高麗史)’를 편찬했는데 그때의 표전(表箋·임금께 올리는 글인 표문과 전문)에는 그의 글씨가 많다. 중국에 보낸 표전문(表箋文)도 대부분 그가 지었다.
정총은 1395년(태조 4) 11월에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표전의 표현이 무례하다 하여 억류됐다. 위 시는 이때 지었다. 이역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았다. 복사꽃이 지고 제비가 돌아와도 그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 금릉 땅이 아름답다고들 하지만 그에게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식 걱정에 먹지도 자지도 못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면 답답하기 이를 데 없고,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이 흐른다. 결국 그는 현재의 중국 운남성 대리시로 추정되는 대리위(大理衛)로 유배돼 가는 도중 사망했다.
정추의 ‘동래회고’ 시를 읽다 그의 아들 정총이 봄날 이국에서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읊은 시가 생각나 소재로 삼았다. 정추의 부산 관련 글은 다음 기회에 써먹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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