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누리호 성공, 실패 쌓인 덕분
누리호 발사에 성공한 21일 저녁 고흥 나로우주센터 내 기숙사.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과 부장들이 모여 조촐히 축하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고 본부장은 “성공하고 나서는 오히려 할 말이 없었다”고 했다. 누리호 1차 발사에 실패했을 때는 정반대였다. 고 본부장은 “실패의 원인을 찾기 위해 연구자들이 밤을 새워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성공과 실패를 대하는 과학자들의 상반된 모습이었다.
우주 발사체 개발은 실패를 통해 경험을 축적하는 사업이다. 고 본부장은 평소에 “결과보다는 과정을 지켜봐 달라”고 말해왔다. 실패를 하더라도 과정은 남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우주 기술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누리호 성공 전에는 수많은 실패가 있었다. 나로호는 2009년과 2010년 두 번 발사에 실패하고 2013년에 성공했다. 나로호 개발 때는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지만 누리호 때는 우리 힘으로만 만들어야 했다. 국가 기밀로 관리되는 우주 기술을 배우기 위해 250명 연구진은 전 세계에 공개된 자료를 샅샅이 뒤지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실패도 경험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패배자란 낙인과 비난만 남는다. 그 과정에 관심 가지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고 본부장은 “약 16분의 비행으로 연구진을 판단하는 기준이 설정되는 것이 억울한 측면도 있다”라고 하소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자들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불면증과 악몽을 꾸는 게 일상이었다. 한 누리호 개발자는 “일반 연구자들도 이런데 책임을 져야 하는 부장들과 본부장의 심적 부담이 얼마나 심할지 상상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연구자들은 꿋꿋이 버티며 21일 누리호를 우주로 보내는 데 성공했다.
이들이 극심한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본인들의 성공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항우연 과학자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 연구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주 개발은 보통 10년이 넘는 장기 프로젝트다. 오랜 기간이 걸리는 만큼 현재 누리호의 주역들도 앞으로 참여할 프로젝트가 손에 꼽힌다. 고 본부장은 “우리가 퇴직하고 더 이상 연구를 안 하면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며 “젊은 세대들이 끊임없이 이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우주 강국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 토양에 양분을 계속 뿌리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한 젊은 연구원은 고등학생 때 나로호 발사를 직접 보며 우주 개발자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이번 2차 발사 현장에도 수많은 학생들이 우주로 향하는 누리호를 지켜봤다. 과학자들이 수많은 실패를 하고 그에 대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연구하는 이유다. 이들의 피나는 노력 덕에 우주 꿈나무들이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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