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조용헌 살롱] [1353] 한국의 민족 종교

bindol 2022. 6. 27. 04:00

[조용헌 살롱] [1353] 한국의 민족 종교

입력 2022.06.27 00:00
 
 

동학, 증산교, 원불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민족 종교들이 전라도 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동학의 전봉준도 그렇지만 강증산 역시 고부 두승산과 김제 모악산 금산사 일대가 주요 활동 무대였다. 원불교 소태산은 전남 영광에서 시작하여 전북 익산에다 본부를 두었다.

왜 민족 종교가 경상도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는가? 이 점이 오랫동안 필자의 문제의식이었다. 물론 동학이라는 화약은 경상도에서 제조하였지만 그 폭발은 전라도의 전봉준으로부터 터졌다. 동학의 전라도 폭발로 전라도에서 대략 20만명이 죽은 것으로 추산한다. 엄청난 숫자이다. 경상도는 이런 숫자가 죽지 않았다. 경주 최부잣집도 동학군들이 왔지만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게 상징적인 장면이다.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에 패배한 동학군들이 남쪽으로 쫓겨 가다가 최후로 집결한 장소가 전남 장흥의 석대뜰이었다. 이 석대뜰 전투에서 동학군 3만명이 몰살당했다고 전해진다. 장흥은 사자산, 억불산, 제암산이 포진한 문필가의 고장이다. 석대뜰 전투 이후로 장흥에는 식자층이 다 죽어 버렸다. 심지어 ‘홀기(笏記) 쓸 사람 하나도 없이 다 죽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경상도는 이런 처참한 상황을 겪지는 않았다.

동학의 피바람 후유증을 달래준 인물이 해원상생(解冤相生)을 주창한 강증산이고, 자력갱생의 경제활동도 병행해야 한다는 영육쌍전(靈肉雙全)의 노선을 견지한 인물이 소태산 박중빈이다. 전봉준, 증산, 소태산 모두 별 볼일 없었던 소외 계층 출신이다. 유독 전라도에서 민족 종교가 일어난 배경은 전답이 많았기 때문이다. 땅이 기름져서 세율도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았다. 풍요로운 들판이 오히려 피를 부르는 요인이었다. 지주와 소작인 간의 갈등도 컸다. 특히 중간 관리자인 ‘마름’ 계층의 착취가 많았고, 이 계층이 동학혁명 때 죽창을 맞는 집중 타깃이 되었다. 경상도는 들판이 적어서 이런 문제도 적었다.

 

영남의 주리(主理) 학풍과도 호남은 전혀 다르다. 최근에 ‘서경덕과 화담학파’(한영우)를 읽어보니까 전라도 밑바닥 저류는 화담학파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다. 상수역학(像數易學)이 그것이다. 선후천 개벽과 정도령, 풍수도참이 섞인 학풍이다. 이는 현실 변화와 상업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정여립의 ‘대동계’가 그렇고 허균이 변산(邊山)에 근거지를 두려고 했던 점, 실학의 비조인 ‘반계수록’의 유형원이 변산에서 살았던 점이다. 전라도의 민주당 ‘몰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