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대만 언론의 이유 있는 ‘반도체’ 자신감
삼성 ‘3나노 반도체’ 양산에도
주요 매체들 ‘우린 흔들림 없다’
국가가 규제 풀고 인력난 대처
韓, 인재 양성에 전 부처 나서야
지난달 중순 반도체 분야 석학인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인터뷰하기 위해 따로 만났을 때였다. 분위기를 풀 겸 이 장관에게 지난해 5월 윤석열 대통령을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에서 처음 만났을 때 얘기를 먼저 물어봤다. 당시 소장이던 이 장관이 윤 대통령의 안내를 맡았다가 결국 장관까지 발탁된 만큼 가벼운 뒷이야기를 기대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답변 내용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이 장관은 “혹시 나중에 이분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연구소에 있는 낡은 장비 1~2개 정도는 새 거로 구해주지 않을까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진짜 열심히 설명했다”며 “학생들은 반도체를 배우겠다고 오는데, 정작 연구소 내 주요 장비 상당수가 수명이 거의 다 된 20~30년 전 것이어서 한번 고장 나면 중고 부품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같은 국내 기업의 분투로 ‘반도체 강국’ 위상을 지키고 있다. 핵심 국가 전략 자산인 반도체는 우리나라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성장 제1 엔진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국내 반도체 산업은 고질적 인력난에 빠져있다. 매년 약 1600명이 필요하지만, 관련 전공 졸업생은 650명뿐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업에 가장 필요한 석·박사급 인력은 매년 150여 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반도체 인력을 키워내는 대학 현장에서 양질(良質) 교육에 필요한 기본 장비 때문에 속을 태우는 게 우리 현실이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인 서울대만 해도 장비가 비싸 기업에서 쓰다 기증한 것이거나 구입한 지 수십 년 된 구식 장비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지난달 30일 대만의 주요 매체인 중국시보와 징주간 등은 자국 TSMC의 경쟁사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3나노(㎚·1나노는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파운드리 양산을 발표하자, ‘노신재재(老神在在)’라는 표현을 써가며 ‘TSMC는 흔들림 없다’는 자신감을 나타냈다. 노신재재는 ‘오랫동안 권좌를 잡은 신은 큰일 앞에서도 여유롭고 차분하다’는 뜻의 대만 속담이다. 3나노가 현재 TSMC의 4나노보다 초미세 공정이 가능한 만큼 시장 흐름을 바꿀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게 됐는데도 대만의 주요 언론 반응은 느긋했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1위인 TSMC에 대한 믿음뿐 아니라, 반도체 인력난에 기업과 대만 정부가 힘을 합쳐 적극 대처하고 있다는 자신감도 여기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며 “탁월한 인재들만 뒷받침되면 결국 기술은 쫓아가 추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고 했다.
대만 정부는 지난 2019년 국가 차원의 반도체 연구 기관인 대만반도체연구센터(TSRI)를 설립해 집적회로 설계, 반도체 소자 제조 공정 등을 통해 인재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5월 대만은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의 교육을 장려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매년 반도체 인재 1만명 확보를 목표로 반도체 학과 정원 규제를 풀고 대학에 1년에 두 번씩 신입생을 뽑는 특혜도 주고 있다. 대만 정부는 해외 유학생들을 국가·연령·전공·경력별로 관리하는 해외 인재 플랫폼도 운영하면서, 자국의 반도체 기업과 이들을 연결해주는 역할도 한다.
한국도 이전 정부가 ‘K반도체 전략’을 내놓고, 반도체 특별법도 만들었지만 내용 면에서 경쟁국에 훨씬 못 미친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새 정부에선 교육부 주도로 반도체 인재 양성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교육부에만 맡겨놓을 사안이 아니다. 전 정부 부처가 달라붙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초격차를 이어나갈 종합 대책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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