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00] 총리가 사라졌다
“자르려 해도 끊지 못하고, 다듬고자 하나 더 헝클어지니(剪不斷, 理還亂)…”라는 노래가 있다. 망국(亡國)의 군주였으나 문재(文才)가 아주 빼어났던 남당(南唐) 이욱(李煜)의 사(詞)에 나온다. 나라 잃고 적국에 포로로 잡혀와 지은 작품이다.
없어지기는커녕 더욱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것은 제 나라와 헤어진 슬픔, 즉 ‘이수(離愁)’다. 요즘의 중국인들도 자주 읊는 명구다. 얽히고설켜 좀체 가닥을 잡지 못하는 상황을 이 노랫말로 표현할 때가 많다.
무엇인가 자르는 행위를 전(剪), 엉킨 실타래 등을 매만져 가닥 잡는 일을 이(理)로 묘사했다. 뒤 글자 쓰임새는 아주 많다. 머리카락 다듬는 이발(理髮)을 먼저 떠올리면 좋다. 영어 ‘Prime Minister’를 번역한 한자어 ‘총리(總理)’도 눈에 띈다.
번역어로 쓰이기 전 이 단어의 새김은 ‘어떤 일을 총괄하다’였다. 의미만으로는 ‘총독(總督)’과 동의어다. 처음에는 지방 관청의 부분 책임자도 지칭했으나 차츰 왕조 중앙 권력의 중요한 통솔자란 뜻을 얻었다.
청나라 때 생긴 최초의 외교부 명칭은 ‘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이다. 대외 업무를 모두 처리하는 기관이라는 뜻이다. 열강이 중국에 외교 공관을 세우자 그에 대응코자 만든 부서다. 이런 곡절을 거쳐 단어는 지금의 ‘총리’라는 말로 정착했다.
요즘 중국의 총리는 규정상 행정부의 모든 일을 이끈다. 그러나 권력 서열 1위인 공산당 총서기(總書記)의 그늘에 늘 가린다. 총서기 시진핑(習近平)의 1인 권력이 강해지면서 총리의 존재감은 더욱 약해졌다.
하강하는 경제, 높아지는 실업률 등에도 속수무책이다. 최근에는 은행 예금 인출 사태와 그를 강제 진압하는 일까지 빚어진다. 매만지려 해도 더 헝클어지는 형국이다. ‘총리’의 기능이 사라진 탓일까. 꽤 불안해 보이는 요즘 중국의 ‘관리(管理)’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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