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스시한조각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2] 권력자의 훈장

bindol 2022. 8. 19. 09:08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2] 권력자의 훈장

입력 2022.07.29 03:00

얼마 전 일본 정부가 아베 전 총리에게 ‘대훈위국화장경식(大勲位菊花章頸飾)’을 수여키로 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훈장은 메이지 시대에 제정된 일본 최고위 훈장으로, 현행 헌법 시행 이후 내국인 수장자(受章者)는 네 명에 불과하다. 굵직한 족적을 남긴 총리 단 네 명(요시다 시게루, 사토 에이사쿠, 나카소네 야스히로, 아베 신조)에게만, 그것도 사후 추서(追敍)할 정도로 최고의 희소성과 영예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천황은 관례적으로 이 훈장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때에는 수여(授與)가 아니라 양여(讓與)라고 한다. 1989년 아키히토 천황과 2019년 나루히토 천황 모두 이 훈장을 패용한 채 즉위식에 참석하였다. 과거 황제가 스스로에게 훈장을 주어 권위를 과시하던 관례가 아직도 통용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훈장은 외국 국가원수에게도 주는데, 이때에는 증여(贈與)라는 표현을 쓴다. 주는 쪽과 받는 쪽의 관계에 따라 수여·양여·증여로 구분하는 언어 감수성이 특기할 만하다.

왕실 전통이 없는 미국은 최고위 훈장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자유 훈장(Presidential Freedom Medal)’과 ‘의회 황금 훈장(Congressional Gold Medal)’을 최고 훈장으로 치는데, 대통령을 지냈다 하여 자동적으로 이 훈장을 수여하는 관례는 없다. 대통령과 의회가 여론 수렴을 거쳐 특별히 공적이 높은 전임 대통령에 한하여 그때그때 수장자를 결정하는 것이 미국의 방식이다.

한국의 최고 훈장은 무궁화대훈장이다. 상훈법에 따르면 이 훈장은 특이하게 내국인 중에는 현직 대통령(과 배우자)에게만 무조건 주도록 규정되어 있다. 대통령 취임 또는 퇴임에 즈음하여 ‘셀프 수여’ 소동이 벌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과거 제국 시대의 구습인지 독재 잔재인지 알 수 없으나, 권력자가 최고 영예를 독차지하는 이러한 훈장은 공화국에 걸맞지 않은 시대착오적 서훈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