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폴란드의 러시아 포비아
냉전 시기 서방의 나토(NATO)에 맞선 공산권 군사동맹이 1955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결성됐다. 그 후 소련이 해제될 때까지 폴란드는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토의 창끝’으로 불린다. 러시아에 맞선 서방의 최전방 군사 거점이란 뜻이다. 이런 극단적 방향 전환이 냉전의 종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러시아와 폴란드 사이 수백 년 피의 분쟁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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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1795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와 함께 폴란드를 분할 점령하며 이 나라를 지도에서 지웠다. 학교에선 러시아어를 배우게 했다. 이후 1918년 폴란드가 독립할 때까지 피로 얼룩진 독립 투쟁이 전개됐다. 2차대전 발발 직후인 1939년, 나치 독일과 함께 폴란드를 다시 분할 점령한 소련은 장교·경찰·지식인 2만2000명을 끌고가 스몰렌스크 인근 카틴숲에서 학살했다. 훗날 스탈린이 “폴란드가 다시는 독립할 수 없게 엘리트들 씨를 말리라”고 지시한 비밀문서가 공개됐다.
▶2010년 4월 레흐 카친스키 당시 폴란드 대통령과 정부 각료, 군 최고위 장성 등이 카틴숲 학살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가 비행기 추락으로 전원 사망하며 옛 상처가 다시 덧났다. 추락의 배후로 러시아 테러를 의심하는 영화가 제작됐고 폴란드 전역은 반(反)러시아 감정으로 들끓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과 올해 우크라이나 침공은 반러시아 감정이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러시아 붉은광장에는 차르 알렉산드르 1세가 1812년 폴란드와의 전쟁 승리를 기념해 세운 동상이 지금도 있다. 폴란드는 이를 모욕으로 여긴다. 폴란드인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러시아가 최고의 적’이라고 한 응답이 94%나 됐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다음 목표는 우리”라며 나토와의 연대 강화에 나섰다.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를 도입했고 동부전선에 패트리엇 미사일을 배치했다. 미군과 합동방어 훈련도 했다.
▶폴란드 무기의 주력은 여전히 러시아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전에서 처참한 수준이 드러나자 무기 선진화에 나서고 있다. 그 대상으로 한국을 선택해 어제 무기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도입 규모가 엄청나다. FA-50경공격기 48대, K2전차는 980대, K9자주포 648대 등 25조원대에 이른다. 무기 도입을 주도하는 이는 카친스키 전 대통령의 형이자 폴란드 집권당 대표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다. 그는 “동맹이 우리를 돕겠지만 우리가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 러시아의 공격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에겐 한미 동맹의 울타리에 안주하지 말라는 충고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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