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검찰 티타임
대형 수사가 시작되면 검찰은 철통 보안에 나선다. 과거 대검 중수부의 수사가 특히 그랬다. 중수부로 통하는 철문은 굳게 닫히고 검사들은 기자 전화를 아예 받지 않았다. 기자들은 한마디라도 들으려고 철문에 귀를 댔고, 조사실에서 눈가루처럼 부서져 나오는 쓰레기 행방을 쫓기도 했다. 그런 검찰 수사 상황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이른바 ‘검찰 티타임’이었다. 주로 수사 책임자가 정해진 시각에 기자들에게 수사 진행 과정을 설명하는 브리핑이다.
![](https://blog.kakaocdn.net/dn/Yo2n6/btrH1AM1XmP/0kisD4YcntoWGkeExkcoa0/img.jpg)
▶이 티타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5년 대검 중수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를 할 때였다. 수사에 큰 관심이 쏠리자 당시 안강민 중수부장이 정례화했다. 피의 사실 공표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그와 최대한 수사 상황을 끌어내야 하는 기자들 사이에서 선문답이 오가고 스무고개가 펼쳐졌다. 그의 재치 있는 입담이 화제가 되면서 일문일답이 그대로 신문 지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예민한 질문을 받으면 눈만 껌뻑거리는 그를 검찰 기자들은 ‘두꺼비’라 불렀다.
▶기자들은 그의 ‘화법(話法) 연구’에 들어갔다. “아직 보고받지 않았다” “글쎄”라는 답을 하면 맞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가 어느 날 오전 기자실에 내려와 커피를 절반쯤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건 아닌데 노태우씨가 오늘 오후 3시 출두합니다.” 기자실에선 난리가 났고, 며칠 뒤 노 전 대통령은 구속됐다. 당시 수사 검사였던 전직 검찰 간부는 “그건 준비한 깜짝 이벤트였다”고 했다.
▶티타임에선 그 나름대로 멋을 부린 은유적 표현도 등장했다. 기자들은 수사 진척도를 묻느라고 “수사가 몇 부 능선에 왔느냐”는 질문을 자주 한다. 1999년 ‘파업 유도 사건’ 수사 책임자는 그 질문에 “서서히 안개가 걷히고 있다”고 했다.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는 “지금 비행을 끝내고 랜딩 기어를 내리고 있다”고 했다.
▶티타임을 없앤 건 조국 전 법무장관이었다. 2019년 10월 검찰의 언론 접촉을 대폭 제한하는 ‘형사사건 공개 금지 규정’을 만들면서다. 당시 자녀 입시 비리 등으로 수사받던 그가 자신의 사건 보도를 막기 위해 만든 ‘셀프 방탄 규정’이란 비판이 나왔다. 법무부가 새 규정을 만들어 25일부터 티타임을 재개하기로 했다. 국민 알 권리 보장과 오보 방지를 위해선 긍정적이다. 다만 검찰과 기자들의 ‘정보 비대칭’ 탓에 티타임이 종종 언론 플레이의 장으로 변질하기도 했던 부작용은 막아야 한다.
최원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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