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58] 탯줄의 상징
정조대왕함 진수식에서 김건희 여사가 황금색 도끼를 들고 진수줄을 자르는 장면이 뉴스에 나왔다. 그동안 필자가 품었던 의문이 있었다. 왜 큰 배의 진수식에서 여성이 밧줄을 자르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여성과 배는 어떤 관계가 있길래? 대통령실의 설명에 따르면, 진수줄을 자르는 행위는 아기의 탯줄을 자르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새로운 배의 탄생이고, 이게 해군의 오랜 전통이라는 것이다.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자궁에 해당한다는 이야기다.
탯줄을 자를 때 비로소 새로운 생명으로 출발한다. 탯줄을 자르는 사람은 산파(産婆)이자 삼신할머니에 해당한다. 남자가 자르지 않는다. 진수줄 장면을 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탯줄코드’(김영균)라는 책이 생각났다. 탯줄로 신화의 의미를 해석해낸 책이다. 저자의 해석에 의하면 제주에 있는 삼성혈(三姓穴)도 탯줄의 의미로 풀어낸다. 삼성혈에는 3개의 구멍이 있다. 제주 토착 성씨인 ‘고·양·부’씨가 바로 이 3개의 구멍에서 나왔다는 신화이다. 탯줄을 자른 단면도를 보면 3개의 핏줄이 있다. 정맥 2개와 동맥 1개이다. 이 3개의 핏줄(구멍)이 바로 삼성혈을 상징한다고 본다.
10여 년전 그리스의 유명한 신탁소인 델피신전의 신화를 풀기 위해서 김영균 박사와 같이 2000m가 넘는 바위산인 파르나소스산에 같이 갔던 적이 있다. 설악산 봉정암과 같은 느낌을 주는 신전터였는데, 들어가는 순간 어떤 느낌이 와 닿을만큼 지기(地氣)가 강한 산이었다. 아폴론 신이 땅속에 살고 있던 큰 뱀인 피톤을 죽이고 아폴론 신전(델피신전)을 세운다. 신전을 세웠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는 의미다. 여기에서 큰 뱀인 피톤은 탯줄을 상징한다. 뱀을 죽였다는 것은 탯줄을 자른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신전이 생겨난 셈이다.
신화에서 뱀은 탯줄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이집트 신화에서도 태양신 ‘라(Ra)’를 가로막는 방해꾼이 거대한 뱀 아포피스이다. 아침에 동쪽에서 태양이 뜨기 위해서는 아포피스를 매일 죽여야만 한다. ‘라’를 호위하는 야생 고양이가 이 뱀을 칼로 잘라 죽이는 장면이 벽화에도 나온다. 고대인들이 볼 때 뱀은 땅속의 지하 세계와 땅 밖의 광명 세계를 연결하는 탯줄로 상상했던 것이다. 일본의 신사(神社) 정문 앞에 걸어 놓은 밧줄이 ‘시메나와’이다. 지푸라기로 꼰 줄이다. 이것도 탯줄로 볼 수 있다. ‘금(禁)줄’이다. 신성한 영역이라는 표시이다. 테이프 커팅도 탯줄을 자른다는 맥락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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