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간신열전] [150] 정도와 중도
평시에는 정도(正道)를 쓰되 비상시에는 권도(權道), 즉 중도(中道)를 쓰는 것은 예부터 오랜 지혜였다. 중도(中道)에서 중(中)은 ‘가운데 중’이 아니라 ‘적중할 중’이다. 화살이 과녁 한복판을 뚫는 모습이다.
“공자 왈 맹자 왈”이라는 비아냥에는 정도만을 고집하는 시대착오적 뉘앙스가 들어 있다. 그러나 맹자는 모르겠지만 공자는 비상시에는 중도를 발휘해야 함을 누구보다 강조한 사람이다. 제자 자공이나 자로 모두, 제나라 재상 관중(管仲)은 자기가 모시던 공자 규를 버리고 환공에게 투항했으니 어질지 못한 자[不仁]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공자 답변은 분명하다.
“관중이 환공을 도와 제후들 중에서 패자가 되게 하여 한번 천하를 바로잡아 백성들이 지금까지 그 혜택을 받고 있으니, 관중이 없었다면 우리는 머리를 헤쳐 풀고 옷깃을 왼편으로 하는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다. 어찌 필부필부들이 작은 신의[諒]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매 죽어서 시신이 도랑에 뒹굴어도 사람들이 알아주는 이가 없는 것과 같이 하겠는가?”
작은 신의란 바로 정도(正道)를 고집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중도를 쓸 때 전제 조건은 수많은 백성이 혜택을 입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상 상황에서 정도를 고집하는 것은 자칫 소인(小仁)에 머물 뿐이고 제대로 중도를 쓴다면 대인(大仁)을 행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지도부 공백 상태로 비상 상황에 빠졌다. 이미 정도로는 풀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 그런데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 지도부의 상황 인식이나 해법 모색에서 중도(中道)를 찾으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중도를 쓸 때의 조건, 즉 다수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길은 무엇인지를 맨 앞에 두고서 길을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국민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대통령을 둘러싼 사람들의 사사로운 권력 행사뿐이다. 사도(邪道)로는 중도는 물론 정도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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