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경찰청장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폴리스 라인은 경고 라인이면서 동시에 징벌 라인이다. “넘으면 안 돼.” “앗, 넘었군. 이번은 봐주지만 또 넘으면 안 돼.” “오늘은 눈감아주겠는데, 다음 집회 때는 어림없어.” 이쯤 되면 이미 금지선이 아니고 조롱선이다. 소음 피해도 마찬가지다. 사후 처벌 으름장은 말짱 꽝이다. 시민이 고통 받기 이전에 선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징벌 라인은 엄격해야 한다. 그래야 징벌이고, 공권력이다. 차별을 두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공권력의 본질은 “무차별적”이다. 공권력, 그중에서 거리·광장·사업장 안전을 담당하는 공권력은 개입을 망설이는 경우가 극도로 제한적이어야 한다.
폴리스 라인을 넘으면 경찰봉으로 즉각 제압하고, 땅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케이블 타이로 두 손을 묶어둬야 하고, 호송차가 도착하면 태워서 현장 연행을 해야 한다. 그게 공권력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해야 한다. 국회의원이든 스타 연예인이든 집회 취지에 동조하러 시위 현장에 갔다가 폴리스 라인을 넘으면 그대로 땅바닥에 제압당하고 허리 뒤로 두 손목이 묶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런 장면이 언론에 자꾸 보도돼야 한다.
공장 점거, 사장실 점거, 출입구 봉쇄 같은 산업 시설 불법 점거는 즉각적으로 공권력이 작동되어야 한다. “사태 추이를 두고 보겠다” “노사 협상을 기다려 보겠다” 이런 식이면 이미 존재 이유가 상당 부분 와해된 공권력이다. 우리 사회를 작동시키는 기제는 물렁물렁하고 유연한 협상력이 우선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시멘트 벽처럼 딱딱한 엄격함이 지키고 있어야 하는 부분도 있다. 회사 경영진과 노조의 협상, 정부 차원의 노사정 협의회가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면, 공권력은 한없이 삼엄해야 한다. 나중에 정상을 참작하고 아량을 베푸는 곳은 재판정이어야 하지 경찰 공권력이 그걸 폼 잡으면 안 된다.
경찰은 “중립과 독립 보장”이라는 자신들의 주장에 걸맞게 그 누구의 눈치도 봐서는 안 된다. 경찰청장의 개인 휴대폰은 꺼져 있어야 한다. 그가 지닌 내부 통신 장비는 엄격한 계선에 따른 지휘와 보고를 위해서만 통화가 이뤄져야 한다. 여의도 정치인과 전화는 절대 안 된다. 대통령과 대통령실 참모의 전화도 받지 말아야 한다. 아니 “시스템적으로” 받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경찰청장의 휴대폰 통화 내역은 정규적으로 공개돼야 한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최근 이렇게 말했다. “사실 공권력을 언제 투입해야 할지 명문화된 기준이 없다. 그래서 불법 집회나 시설 점거 등 상황별로 어느 정도 단계가 되었을 때 공권력 개입이 필요하다는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공권력이 언제 개입할지 시스템화하는 것이다.” 일부는 옳은 얘기다. 그러나 매뉴얼이 너무 정교하고 복잡하면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된다. 무슨 전자제품 사용 설명서처럼 수십 쪽이 넘어가면 안 된다. 애매모호해도 안 된다. 시위·집회 현장에서 경찰 병력을 지휘하는 수사·경비 과장과 일선 경찰서장이 헷갈리면 그건 맹탕 매뉴얼이다. 공권력 매뉴얼은 간단 명료해야 한다. 한 문장이면 족하다. “불법이면 개입한다.”
‘상황별로 어느 정도 단계가 되었을 때’라고 한 그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불법적 상황은 그것이 발생한 즉시 이미 심각한 것이다. 이미 피해가 커지고 있고, 공권력의 절대 권위가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간을 보는 쪽은 ‘불법 시위꾼’이어야 하지, 공권력이 ‘상황별로 단계를 판단’하려 하면 그것은 이미 눈감은 공권력이다. 공권력은 윤 청장이 말한 것처럼 사태를 해결하는 ‘마지막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불법적 상황이 벌어졌을 때 발동되는 ‘첫 번째 조치’이어야 한다. 그동안 폴리스 라인은 경찰만 지키고 시위꾼은 무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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