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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1363] 정읍 琴朋洞, 두 개의 거문고

bindol 2022. 9. 5. 05:17

[조용헌 살롱] [1363] 정읍 琴朋洞, 두 개의 거문고

입력 2022.09.05 00:00
 

우리나라 곳곳의 지명(地名)은 예사롭지 않다. 수백년 앞을 내다보고 지은 지명들이 있기 때문이다. 1년 앞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수백년 앞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이런 지명들은 과연 누가 지었던 것일까? 비상(飛上) 비하(飛下)라는 지명이 있던 곳에 비행장이 들어서고, 따뜻할 온(溫) 자가 들어간 곳에서는 나중에 온천이 개발된 사례가 많다. 산봉우리를 관통하여 지하 도수터널을 뚫어 놓고 보니 그 동네에는 통수리(通水里)라는 지명이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방에 강연을 가면 그 지역의 산봉우리나 동네 지명을 유심히 살펴보는 습관이 있다. 얼마 전에 정읍의 내장산 근처에 있는 ‘251 스페이스’라는 문화공간에 강연을 갔었다. 강연장 건물 3층에서 앞산을 바라다보니 봉우리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바위 봉우리가 테이블처럼 평평한 모습으로 바라다보였다. 산 모습이 평평하면 풍수가에서는 토체(土體)라고 부른다. 토(土)는 공정하고 균형 감각을 갖춘 인물을 배출한다. 그래서 조선시대 사람들은 토체 봉우리가 있는 동네에서는 군왕이 나온다고 믿었다.

 

“저 산봉우리 이름이 뭐요?” “내장산 서래봉(瑞來峰)입니다.” “이 동네 이름은 뭡니까?” “금붕동(琴朋洞)이라고 합니다.” “뭔 뜻이죠?” “거문고가 있으니 친구들도 많이 모여든다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네 토박이의 거문고 이야기를 들으니 퍼뜩 생각이 났다. ‘아! 저 서래봉을 옛날 사람들은 거문고로 보았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거문고의 형태는 둥그렇거나 세모가 아니고 일자 형태로 평평하다. 거문고는 대개 옥녀탄금(玉女彈琴)이라고 해서 거문고의 위치는 좀 아래쪽, 무릎 쪽에 있기 마련이다. 옥녀가 한쪽 무릎 위에 거문고를 올려 놓고 연주한다.

 

이탈리아 남부 지역의 소렌토(Sorrento)에 가보니까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꽂은 옥녀봉이 앉아 있고, 옥녀의 무릎에 해당하는 그 해안가 절벽 쪽에 커다란 거문고가 놓여 있는 옥녀탄금의 풍수였다. 옥녀와 거문고가 있으니 ‘돌아오라, 소렌토로’가 나올 만한 형국이었다. 그러나 금붕동의 거문고는 산 위에 있었다. 이 점이 달랐다. 왜 벗이라는 의미의 붕(朋) 자가 들어갈까? 이 동네 뒤쪽으로 거문고 봉우리가 작은 게 하나 더 있었다. 동네 뒷산인 칠보산 자락에 작은 거문고가 있었고, 서래봉이 큰 거문고였던 것이다. 두 개의 거문고가 서로 친구처럼 마주 보고 있었으므로 ‘금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