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들은 풀만 먹어도 몸 안에 기름기가 많다. 옥수수 사료를 먹고 자란 소들은 기름기가 더 많은 살을 가진다. 살코기에 대리석(marble) 무늬를 넣은 마블링 제품(?)이다. 소가 먹는 풀이나 옥수수는 모두 탄수화물이다. 풀은 식이섬유로도 불리는 섬유질(cellulose)이 주성분이며, 옥수수는 전분(澱粉)으로도 불리는 녹말(starch)이 주성분이다. 모두 단당류인 포도당이 중합체로 길게 이어진 다당류에 속한다. 이들 탄수화물 안에는 기름 성분이 없다. 어찌 된 연유로 풀과 옥수수만 먹은 소고기에 기름이 잔뜩 끼는 걸까?
소는 섬유질 분해 소화 능력을 가졌다는 점이 다를 뿐 소와 사람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똑같다. 넓은 초원에서 풀만 뜯어 먹고 자란 소의 살코기에는 기름기가 많지 않다. 좁은 축사에 갇혀 옥수수 사료를 먹고 자란 소의 살코기에는 기름기가 많다. 백색 지방이 대리석 무늬처럼 낀 마블링 소고기다. 사람도 식사량에 비해 활동량과 운동량이 적게 되면 살에 백색 지방이 낀다. 복부지방, 내장지방이며 똥배로 불리는 뱃살이다.
도대체 어떻게 탄수화물이 소나 사람의 몸속에서 기름기인 지방으로 바뀌는 걸까? 탄수화물과 지방의 구성 원소가 똑같아서다. 포도당, 과당과 같은 단당류든, 엿당과 설탕과 같은 이당류든, 올리고당이든, 섬유질이나 녹말과 같은 다당류든 모든 탄수화물(炭水化物)은 말 그대로 탄소와 물로 이루어진 화합물이다. 탄소(C) 수소(H) 산소(O)가 육각형 고리구조로 결합되어 있다. 지방도 마찬가지다. 구성원소는 똑같다. 다만 세 원소의 결합구조가 탄수화물과 다를 뿐이다.
그 결합구조가 어찌 다르길래 탄수화물이나 지방이 되는 걸까? 대략 육각형 고리구조로 결합되면 탄수화물이며, 사슬구조로 결합되면 지방이다. 물에 녹는 친수성이 아니라 물에 녹지 않는 소수성(疏水性) 물질을 통칭하는 지질(脂質)의 한 종류인 중성지방, 즉 지방(脂肪)은 세 종류로 나뉜다. 이 또한 세 원소가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른 구분이다. 세 원소 중 탄소가 단일 결합하면 지방산을 이루는 3층 사슬이 규칙적으로 겹겹이 쌓여 고체 포화지방이 된다. 마블링 소고기나 돼지비계와 같은 백색지방이다. 하나라도 이중 결합하면 지방산을 이루는 3층 사슬이 불규칙하게 헐렁해져 액체 불포화 지방이 된다. 견과류에 함유된 식물성 기름이나 생선 기름이다. 이 액체상태의 불포화 지방에 수소를 첨가하여 고체상태로 가공한 것이 트랜스 지방이다. 탄소 수소 산소가 부리는 현란한 마법요술 같다. 근원적 음양원리에 의한 복잡한 대사작용이다. 내가 아까 먹은 탄수화물인 밥은 다당류인 녹말이다. 입안에서 치아로 잘리고 침과 섞이며 엿당인 이당류로 분해된다. 장에서 단당류인 포도당으로 분해된다. 이제 세포로 들어가 열과 에너지를 내는 연료로 쓰인다. 남는 포도당은 간에서 다당류인 글리코겐으로 저장된다. 운동량이나 활동량이 적어 꺼내 쓸 필요가 없어지면 몸 안에서 지방으로 전환된다. 내 뱃살에 마블링 소고기처럼 지방이 낀다. 살이 찐다. 그러니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야 한다. 당연한 이치는 알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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