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성적으로 시어사가 되었다(以高弟爲侍御史·이고제위시어사)
(장강이) 어려서 삼공의 아들로서 경명행수로 효렴에 천거되었지만 나아가지 않았고, 사도가 부르자 높은 성적으로 시어사가 되었다.
(張綱)少以三公子經明行修擧孝廉, 不就; 司徒辟, 以高弟爲侍御史.((장강)소이삼공자경명행수거효렴, 불취; 사도벽, 이고제위시어사.)
‘후한서(後漢書)’에 위 문장이 수록돼 있다. 중국 송(宋)나라 때 관리이자 문학가인 장강(1083~1166)에 대한 언급이다. 장강은 태학(太學)에서 공부했으며, 장원급제자로 알려져 있다. 당시 장강의 아버지는 ‘三公’, 즉 송나라 3개의 최고위 직급인 태위(太尉)·사도(司徒)·사공(司空) 중 한 직급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위 문장의 ‘經明行修’는 효렴(孝廉)의 과목이다. 한대(漢代)부터 효렴제도가 있었다. ‘향리에서 부모를 잘 섬기고 청렴한 사람을 천거해 벼슬에 나아가게 한 법’이다.
장강이 살던 송나라 시대에는 관료로 나아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군국(君國)에서 추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부(公府)에서 벽소해서 쓰는 것이다. ‘피’은 부른다는 뜻이다. 그래서 위 문장 앞 절의 뜻은 장강이 어릴 적에 ‘經明行修’로서 군수에게 효렴으로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뒤에 오는 절의 뜻은 사도가 다시 불렀으며 장강은 우수한 성적으로 시어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위 문장을 보면 ‘不就’ 다음에 필자가 세미콜론(;)을 해놓았다. ‘표점(標點)’은 한문의 올바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구두점이나 띄어쓰기 등 적절한 부호를 표기하는 것을 일컫는다. 단순한 병렬복문은 쉼표를 쓰지만, 복잡한 다중복문의 사이에는 세미콜론을 사용한다. ‘不就’를 ‘司徒辟’과 붙여 쓰기 쉽다. 그렇게 된다면 전후에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생긴다. 장강이 사도의 부름에 나아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높은 성적으로 시어사가 될 수 있었단 말인가?
가끔 필자에게 표점 문제에 대해 문의하는 분들이 있다. 어제도 목압서사에 두 분이 오시어 표점에 대해 물었다. 필자도 표점에 애를 먹는다. 어려운 문장을 만났을 때는 먼저 쉬운 부분에 표점을 한 뒤 문장 전체를 다 읽고 앞뒤 맥락에 따라 표점을 해주는 게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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