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99> 수리산에 은거하며 처사로 생을 마감한 조선 중기 시인 이응희

bindol 2022. 8. 29. 05:16

무엇하러 높은 벼슬 원하겠는가?

 

초가집은 시내 물가에 있고(草屋臨溪水·초옥임계수)/ 
사립문은 푸른 산과 마주했네.(柴門對翠微·시문대취미)/ 
손님 오니 놀란 학 소리 들리고(客來聞鶴警·객래문학경)/ 
장사꾼 오니 닭 나는 것 볼 수 있네.(商到看鷄飛·상도간계비)/ 
국화 키우며 긴 여름 보내고(養菊消長夏·양국소장하)/ 
호미로 채소밭 매며 저물녘 기다리네.(鋤葵待夕暉·서규대석휘)/ 
자연에는 즐거운 일 많은데(林泉多樂事·임천다락사)/ 
무엇하러 높은 벼슬 원하겠는가.(何必願金緋·하필원금비)



위 시는 조선 중기 시인 옥담(玉潭) 이응희(李應禧·1579~1651)의

‘閑情’(한정·한가한 마음)으로 그의 문집 ‘옥담시집’(玉潭詩集)에 있다.

그는 광해군 때 이이첨이 인목대비를 폐위하고자 꾀할 때 이를 만류하는

‘백의항소(白衣抗訴)’를 올렸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경기도 과천 수리산 아래 은거했다.

그의 학식과 덕망이 높음을 알고 조정에서 거듭 중용하려 했으나 사양했다.

그가 과거를 하지 않은 건 선조인 안양군(安陽君·미상~1505) 이항의 유언에 따른 것이라 한다. 안양군은 조선 성종의 서자로 셋째 아들이다. 1504년(연산군 10) 연산군이 생모 윤씨가 폐위되고 죽은 이유가 성종의 후궁 엄씨와 안양군의 모친 정씨(鄭氏)의 참소에 있다고 여겼다. 안양군은 그해 충북 제천에 유배됐다가 1505년 절도(絶島)에 이배된 뒤 동생 봉안군 이봉과 함께 사사됐다. 송나라 시인 임포(林逋)는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자식 삼았다 해 ‘매처학자(梅妻鶴子)’로 불린 은자의 상징이다. 이응희는 매처학자는 아니었겠지만 자연에 은거하는 처사로 생을 마쳤다. 유유자적하는 계절은 지금쯤인 것 같다.

필자는 어제 고향인 대구 달성군 논공읍 노이리 갈실마을(蘆谷·노곡)의 문중 산소에 가 일가친지와 벌초를 했다. 생육신 조려(趙旅)의 5대손으로 보성·괴산 군수 등을 지내고 ‘동계문집’ 등을 남긴 동계(東溪) 조형도(趙亨道·1567~1637)의 5대손이자 함안 조씨 20세손인 조미(趙嵋) 할아버지가 입향해 은거하기 시작했다. 함안 조씨 동계공파(東溪公派) 집성촌을 이뤄 한때 200가구가 넘었다. 크게 현달한 인물은 없지만, 근동에서는 문사·학자가 많은 문중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