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동 교수의 新經筵

세상은 욕심 많은 암흑시대…“공자의 정명正名으로 횃불 밝히자”

bindol 2022. 9. 28. 06:31

공자의 제자 자로

 

일전에 어떤 분이 e메일을 보내왔다. ‘개판 5분 전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이었다. 그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고급공무원, 국회의원, 판사, 검사, 3권 분립, 요인들은 말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충성을 한다고 손 들고 서약만 했지, 사리사욕과 권력 쟁탈에 눈멀고 귀먹어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한심한 나라. 학생들은 일진회인가 뭔가 하면서 조폭 흉내를 내고, 대기업들은 영세기업을 뜯어먹으면서 살고 있는 나라. 사기꾼들은 해외에서 활보하면서 여유만만, 말단 공무원부터 판사들까지 대통령을 조롱하고, 지역의 무식한 잡배들은 검경(檢警)의 앞잡이가 되고, 수십억 원대의 체납자들은 ‘내 배 째라’해도 속수무책이고. 나라를 말아먹는 집단들은 큰소리 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산화한 사람은 죄인이 되고. 국회의원들은 그만둬도 월 100만 원 넘게 받아 처먹고. 감방 갔다 나온 놈들은 국회의원 하겠다고 기자회견하고. 학생이 선생님을 폭행하는 나라. 한글도 제대로 못 쓰는 사람이 언론인 행세하는 나라. 장관은 20일만 해도 죽을 때까지 연금 타먹는 나라.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괴상한 나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세계에 알려졌던 나라가 부모를 죽이고 노인을 제집 강아지만큼도 못한 것으로 취급하며, 도둑과 사기꾼이 구더기같이 만연한 나라. 어린이 보호소에 보내는 3~4세 아이의 부모에게는 1개월에 40만 원 주면서 6·25 참전 국가유공자란 80 늙은이에게는 12만 원 주며 생색 내는 썩어빠진 국가, 대한민국이란 나라. 우리나라.”

“노인을 제집 강아지만 못한 것으로 취급하는 나라”

다소 과장된 표현이 없지 않고, 또 군데군데 비속어가 섞여 있기도 했다. 꽤 장문으로 구성된 내용이라 도중에 부분적으로 생략하고 옮겨 실었다. 이 글은 대한민국이 망하기를 바라는 냉소적인 마음으로 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을 여기에 소개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이 글에서 지적한 대로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다 그렇다면 벌써 나라가 망했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우려되는 바가 없지는 않다. 자꾸 이런 식으로 나아가다가는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돼가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자꾸 이렇게 돼가는 것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계속 욕심을 키워가기 때문이다. 과거의 우리는 욕심을 버리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단군할아버지 때는 동굴에 들어가 햇빛을 보지 않고 마늘과 쑥을 먹으며 욕심을 버리는 노력을 했었고,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때는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욕심을 버리는 노력을 했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때는 유교라는 가르침을 통해 역시 욕심을 버리는 노력을 했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유교의 가르침이 오히려 나라를 망친 원흉이란 누명을 쓰면서 욕심을 버리는 노력을 그다지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욕심을 채우는 일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실정이다.

욕심은 채울수록 커진다. 그러므로 욕심을 채운 뒤에는 더 커져버린 욕심을 더 채우기 위해 정신을 잃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들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정신을 잃어버린 데에 기인한다. 이를 해결할 근본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욕심을 없애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욕심을 점점 더 키워가기만 한다면 나라는 자꾸 위험한 곳으로 치닫다가 급기야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욕심을 없애더라도 다 없애는 경우가 있고 덜 없애는 경우가 있다. 덜 없애면 ‘덜 없다’가 되고, ‘더럽다’가 된다. 욕심을 덜 없앤 사람이 정치를 하면 정치를 더럽게 하고, 행정을 하면 행정을 더럽게 하며, 경영을 하면 경영을 더럽게 하고, 교육을 하면 교육을 더럽게 한다. e메일에서 지적한 내용은 더러운 정도가 지나친 경우를 주로 다룬 것이다.

반면에 욕심을 다 없애면 ‘다 없다’가 되고 ‘답다’가 된다. 그런 사람이 ‘다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욕심을 깨고 깨어 끝까지 깬 사람이다. 끝까지 깨서 ‘깨끝’한 사람이다. 말하자면 다운 사람이 깨끗한 사람이다. 대통령다운 사람이 정치를 하면 깨끗한 정치를 하고, 행정가다운 사람이 행정을 하면 깨끗한 행정을 한다. 경영자다운 경영자가 경영을 하면 깨끗한 경영을 하고, 교육자다운 교육자가 교육을 하면 깨끗한 교육을 한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가 이상사회다. 이상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정치의 목적이고, 교육의 목표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서 물었다. 공자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 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답게 되는 것, 그렇게 되도록 인도하는 것이 정치라 했다. 이러한 공자의 정치사상을 정명사상(正名思想)이라 한다. 정명이란 이름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이름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임금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임금다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고, 신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신하다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며, 아버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아버지다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고, 아들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아들다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각각의 사람들에게 욕심을 없애도록 유도할 때 가능한 일이다. 정명사상의 내용은 제자인 자로와의 문답에서 나온다.

공자의 정치, 정명사상(正名思想)

자로가 공자에게, “정치를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반드시 이름을 바르게 할 것이다.”

그러자 자로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