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동 교수의 新經筵

배 아픈 건 못 참는다? 분열과 자멸 막는 길은 修身

bindol 2022. 9. 28. 08:24

‘한국병’의 원인과 치유법

한국이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룬 것은 경영에 성공한 기업들의 기여 덕택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각박하다. 정치는 혼란하고 교육에도 문제가 많다. 그런데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것은 기업인들의 노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는 잘 몰라도 삼성이나 현대는 안다’고 말하는 외국인이 많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기업인에 대한 비난 여론이 극에 달해 있다. 기업인에게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의 횡포는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대기업이 국민에게 끼친 폐해도 있지만 한국의 경제발전에 세운 공은 그보다 더 크다.

흔히 ‘대기업이 자기 힘만으로 성장한 건 아니다’ ‘금융권 특혜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다’고 얘기한다. 대기업은 그런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특혜를 받은 기업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특혜를 받고도 망한 기업이 더 많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경영에 성공해서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기업들에는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부자를 비난하는 것이 보편화해 있다. 가난이 자랑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라가 정상일 때는 가난하고 천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지만, 나라가 정상이 아닐 때는 부유하고 귀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 ‘論語’)



우리나라 정치는 문란하긴 했지만, 열심히 일해도 먹고살 수 없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사회는 아니었다. 부정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의 사회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가난하게 사는 것이 자랑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최근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부귀한 자들에 대한 비난이 도를 넘었다. 심지어 적개심을 표출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런 분위기는 앞으로의 발전에 큰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한국인의 이중구조

한국인에겐 독특한 정서가 있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고 한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도 있다. 이런 말이 나오게 된 원인을 찾아보고 그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대밭에서 자라는 두 그루의 대나무를 보자. 지상에서는 각각 다른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자라고 있지만 지하에서는 한 뿌리로 연결돼 있다. 이 경우 지상에 자라고 있는 부분만 보고 두 그루라고 판단하는 방법과 지하의 한 뿌리를 기준으로 해서 두 그루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방법이 있다. 두 가지 판단 방식 중 유럽인이나 일본인의 판단방식은 전자에, 한국인의 판단방식은 후자에 속한다.

사람은 몸과 마음의 두 요소로 구성되고, 마음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존재하는 한마음으로 연결된다. 한마음이 대나무의 한 뿌리에 해당한다. 한국인은 한마음을 중시한다. 한마음을 기준으로 하면 사람은 각각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한마음으로 연결돼 있으므로 모두 하나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개인주의가 발달하지 않는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나라의 사람들은 몸도 마음도 각자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의 마음을 남이 모른다고 생각해 자기의 마음을 늘 말로 표현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같은 말을 쉬지 않고 한다. 그러나 한국인은 다르다. 네 마음 내가 알고, 내 마음 네가 알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존재구조는 이중적이다. 대나무가 지상에 보이는 부분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지하 부분이 있는 것과 같다. 지상의 부분은 초라할 수 있지만, 지하의 한 뿌리는 무한히 크면서 영원히 존재한다. 한마음은 무한히 크면서 영원히 존재한다. 무한히 큰 것이 우리말로 ‘하’이고 영원한 것이 ‘늘’이므로, 한 뿌리가 하늘이고, 한마음이 하늘이다. 한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마음이고 하나님마음이며 천심(天心)이다. 몸과 마음 중에서 몸은 초라할 수 있지만 마음은 한마음에 닿아 있다. 그 한마음을 붙잡아 그 한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늘이다. 동학에서 말하는 인내천(人乃天)이다. 현재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도 본래는 하늘이기 때문에 무시하면 안 된다.

이런 이중구조가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이 ‘춘향전’이다. 춘향은 본래 성 판서의 귀한 따님이지만 현재는 초라한 기녀의 딸이다. 이몽룡은 그를 귀한 따님으로 여겨 접근하고, 변 사또는 천한 기녀의 딸로 여겨 접근한다. 춘향은 이몽룡을 위해서는 목숨도 바치지만, 변 사또에겐 목숨을 걸고 저항한다. 춘향은 변 사또에게 붙잡혀 모진 고생을 한 끝에 이몽룡에 의해 구제되고 변 사또는 처벌받는다.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의 내용도 잘 살펴보면 춘향전과 유사한 구성이 많은데, 그 까닭이 바로 한국인의 이중구조에서 기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