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노리면 모두 죽는다” 자동 核타격 협박
한미, 더욱 정교한 확장억제전략 만들어야
북한이 이달 초 공표한 ‘핵무력 정책’ 법령은 소련식 핵전쟁 기계의 북한판이라 할 수 있다. 법령은 핵무기에 관한 김정은의 독점적 결정권을 명시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국가핵무력 지휘통제체계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 사전에 결정된 작전방안에 따라 적대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 김정은의 생명이 위협받으면 곧바로 공멸(共滅)의 ‘물귀신 기계’가 가동된다는 협박이다.
북한의 이런 극단적 위협은 예견된 일이다. 수령 1인 독재국가에서 국체(國體)라는 핵무기도 유일영도체계를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령이 사라지면 핵무기도 작동 불능에 빠지게 되니 자동기계 같은 보완 장치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새 법령은 김정은을 보좌하는 ‘국가핵무력지휘기구’를 명시했지만 구성과 운영 등 모든 것을 베일 속에 감춰뒀다.
그와 관련해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위협감소국(DTRA)이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 ‘북한의 핵지휘통제(NC2): 선택지와 시사점’은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보고서는 북한이 채택할 수 있는 NC2 시스템으로 △독단적 자동작동(automaticity) △정치적 차원의 권한 이양(devolution) △군사적 차원의 재량권 위임(delegation) △조건부 사전위임(pre-delegation) △무기 유형별 혼종(hybrid) 체계 등 다섯 가지 모델을 제시한다.
보고서는 자동작동 모델에 무게를 두면서도 다른 선택 가능성을 함께 점검한다. 수령 유일체제에서 ‘2인자’란 존재가 있을 수 없고 군부 역시 잦은 숙청과 물갈이 대상이 되는 북한이다. 하지만 내밀하게 여동생 김여정이나 최측근 조용원 최룡해에게 권한을 부여하거나 군사작전의 즉응성을 높이기 위해 야전부대에 위임할 수도 있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 유형에 따라 다원적 지휘체계를 가동할 가능성에 보고서는 주목한다. 전략핵은 김정은의 독점적 통제 아래 두면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전략사령부에, 전술핵은 포병사령부에 위임하는 식이다. 권한 위임은 우발적 핵사용과 확전의 위험성을 더욱 높인다. 새 법령이 ‘작전적 사명’ ‘작전상 필요’를 언급한 대목은 심상치 않다.
그렇다면 한미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전략적 안정성 제고를 위한 대북 메시지 발신이 필요하다. 어떤 핵무기의 사용도 체제의 절멸을 낳을 것임을 경고해야 하지만, 선제타격을 공언하는 것은 김정은의 발작적 충동과 권한 위임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전문가들도 일찍이 참수작전이나 킬체인, 대량응징보복 같은 과잉 레토릭을 경계해왔다.
가공할 핵무기를 둘러싼 전략게임은 생존과 멸망의 딜레마 속에서 상대를 발끈하게 하거나 겁먹게 만드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미국 본토를 전략핵으로, 휴전선 남쪽을 전술핵으로 위협하는 북한에 맞설 대응 능력을 갖추는 것 못지않게 북한이 위험천만하게 날뛰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미가 확장억제전략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야 하는 이유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한미, 더욱 정교한 확장억제전략 만들어야
이철희 논설위원
이른바 ‘페리미터(Perimeter)’ 시스템은 냉전기 소련이 극비리에 운영했다는 자동 핵 반격 기계다. 그 실존 여부를 두고선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수뇌부가 외부 공격으로 무력화되거나 통신 두절 사태가 나면 지진과 방사능, 광선, 기압 계측을 통해 핵 피격을 감지하고 자동으로 전면 핵보복을 수행하는 장치다. 사람의 개입 없이 인류 절멸로 몰아가는 전자동 기계, 그래서 ‘죽은 손(Dead Hand)’이라고도 불린다.북한이 이달 초 공표한 ‘핵무력 정책’ 법령은 소련식 핵전쟁 기계의 북한판이라 할 수 있다. 법령은 핵무기에 관한 김정은의 독점적 결정권을 명시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국가핵무력 지휘통제체계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 사전에 결정된 작전방안에 따라 적대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 김정은의 생명이 위협받으면 곧바로 공멸(共滅)의 ‘물귀신 기계’가 가동된다는 협박이다.
북한의 이런 극단적 위협은 예견된 일이다. 수령 1인 독재국가에서 국체(國體)라는 핵무기도 유일영도체계를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령이 사라지면 핵무기도 작동 불능에 빠지게 되니 자동기계 같은 보완 장치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새 법령은 김정은을 보좌하는 ‘국가핵무력지휘기구’를 명시했지만 구성과 운영 등 모든 것을 베일 속에 감춰뒀다.
보고서는 자동작동 모델에 무게를 두면서도 다른 선택 가능성을 함께 점검한다. 수령 유일체제에서 ‘2인자’란 존재가 있을 수 없고 군부 역시 잦은 숙청과 물갈이 대상이 되는 북한이다. 하지만 내밀하게 여동생 김여정이나 최측근 조용원 최룡해에게 권한을 부여하거나 군사작전의 즉응성을 높이기 위해 야전부대에 위임할 수도 있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 유형에 따라 다원적 지휘체계를 가동할 가능성에 보고서는 주목한다. 전략핵은 김정은의 독점적 통제 아래 두면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전략사령부에, 전술핵은 포병사령부에 위임하는 식이다. 권한 위임은 우발적 핵사용과 확전의 위험성을 더욱 높인다. 새 법령이 ‘작전적 사명’ ‘작전상 필요’를 언급한 대목은 심상치 않다.
가공할 핵무기를 둘러싼 전략게임은 생존과 멸망의 딜레마 속에서 상대를 발끈하게 하거나 겁먹게 만드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미국 본토를 전략핵으로, 휴전선 남쪽을 전술핵으로 위협하는 북한에 맞설 대응 능력을 갖추는 것 못지않게 북한이 위험천만하게 날뛰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미가 확장억제전략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야 하는 이유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