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6664]식초먹기 유행

bindol 2022. 10. 3. 06:04
[이규태코너][6664]식초먹기 유행 발행일 : 2005.10.21 / 여론/독자 A34 면
▲ 종이신문보기어릴 적 서리짓 하다 들키면 아버지에게 넘겨지고 아버지는 그 배상과 응징을 하고 나서 어머니에게 넘긴다. 어머니에게 가면 뒤란으로 데려가 코를 틀어막고 식초 한 숟가락 강제로 먹는 절차가 반드시 따르게 마련이었다. 그로써 마음속에 도사린 사악한 마음을 해독할 수 있다고 믿었었다. 음식에 식초를 치면 살균이 된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문헌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 식초는 사독(邪毒)을 죽인다 했고, 식물에 도사린 독뿐 아니라 마음속에 도사린 사심도 해소시키는 것으로 알았던 데에서 못된 짓을 하면 식초를 먹였음 직하다. 초를 한자로 ‘醋’로 쓰는데, 초가 식독(食毒)을 처리(조치·措置)한다 하여 처리할 조(措)자의 한 변(昔)을 따다 이름을 삼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식초는 7월 7일 칠석날 담그는 것이 관례요 일곱 번씩 세 차례 스물한 번 젓는 등 음양설에서 양(陽)수를 지키는 금기가 별난 것도 악(惡)이 기생하는 음(陰)수에 대처시키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식초의 정신요법이 또 있었다. 초를 치면 각기 다른 맛들이 신맛으로 통일되듯이, 일심동체(一心同體) 곧 한마음을 보장할 필요가 있을 때 초를 나누어 마셨다. 이를테면 시집을 가면 그 시집 마을의 부녀자들이 이 새내기 며느리를 동질화(同質化)하는 수단으로 학대를 가하는 절차가 따르게 마련이다. 이 새내기 학대 수단 가운데 하나로 물 건너 외딴 상엿집에 초(醋)병을 숨겨 놓고 새 며느리로 하여금 이를 찾아오도록 시킨다. 이 새내기가 찾아온 초를 모두가 나누어 마시는 동질화 의식을 베풀었던 것이다. 중국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화나 오해나 원한 등 앙금을 푸는 수단으로 초를 나누어 마시는 관행이 있었다. 안고 있던 아기를 잘못 숯불 위에 떨어뜨려 전신화상을 입었는데 초를 발랐더니 상처가 나지 않았다는 ‘북몽쇄언(北夢?言)’에 적힌 옛 사례를 들어, 사람과 사람이 싸워 불화나 앙금이 생겼을 때 식초를 그 마음의 상처 부위에 바르면―곧 식초를 먹으면 후환이 없어질 것으로 안 데서 비롯된 관습인 것 같다는 해석이 있다.

동서고금의 공통된 염원인 장수무병(長壽無病)을 위해 식초 먹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해서 조상들의 식초 먹는 관행이 정신적으로 한결 승화돼 있었음을 되뇌어 보았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