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의 악순환
중앙일보
입력 2022.10.04 00:34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소문은 그럴 듯해야 퍼진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면 동력을 잃고 제풀에 사그라든다. 소셜미디어의 확장은 뉴스와 함께 루머도 빠르게 전파되는 시대를 만들었다. 중국은 지금 루머와 전쟁 중이다.
최근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는 뉴스 사이트 한가운데 고정된 제목을 걸고 있다. ‘중국 유언비어 공동 반박 플랫폼’. 말 그대로 정부가 직접 잘못된 뉴스나 소셜미디어에 도는 헛소문을 바로 잡는 사이트다. 통상 정정 보도를 우측 하단에 작게 배치하는 우리와 달리 시선이 집중되는 화면 정중앙에 배치했다. 중국 사이버공간관리국은 지난 8월부터 양대 포털 바이두와 텐센트, 중국식 트위터인 웨이보, 동영상 사이트인 더우인, 콰이쇼우, 샤오홍슈 등 12개 사이트에 대한 허위 정보 단속에 들어갔다. 오는 16일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특히 코로나 관련 루머가 가장 많다. ‘역병보다 소문이 무섭다’는 부제 아래 ‘집안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 체포됐다는 소문은 가짜’라거나 ‘코로나로 인한 투신 자살 영상은 컴퓨터로 조작한 것’ 등이 공표됐다. 불안을 가중시키는 사실은 대부분 가짜로 지목됐다. 한 여성은 웨이신(중국식 카카오톡)의 단체방에 특정인이 코로나 확진자라는 글을 올렸다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체포됐다.
‘닝보시가 태풍 무이파에 침수됐다는 영상은 가짜’(왼쪽), ‘청두시에서 원숭이두창 확진자 출현 거짓’(오른쪽). [중국 유언비어 반박 플랫폼 캡처]
부연 설명이 인상적이다. “온라인은 법 밖의 공간이 아니다. 온라인에서의 행동은 법과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법을 두려워하고 루머를 믿거나 퍼뜨리지 말아야 한다. 불법·범죄의 단서를 발견하면 공안기관에 적극 신고해주기 바란다”. 중국의 과도한 ‘제로 코로나’ 정책에 여론이 악화되고 있지만 이를 솔직하게 털어놓거나 확인 안 된 사실을 전언으로라도 퍼뜨렸다간 체포되기 십상이다.
플랫폼은 역사적 허무주의도 유언비어로 다룬다. 중국 공산당의 역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비판을 하면 처벌될 수 있다. 당 간부에 대한 소문이나 근거없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전부 루머로 간주된다. ‘청두에서 원숭이 두창이 발병 소문은 가짜’ 등 정부가 바로 잡을 필요가 있는 잘못된 정보들도 있지만 이는 당국이 선별한다. 유언비어 퇴치는 또다른 통제 수단이다.
지난달 24일 해외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갑자기 ‘시진핑 주석이 군부 쿠테타로 인해 가택연금 중’이란 소문이 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 참석 후 격리 중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불투명한 정치 구조가 빚어낸 촌극인 동시에 중국 소셜미디어에선 한 줄도 표출되지 않는 여론 통제의 단면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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