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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중국은 핵 위협에 안전할까

bindol 2022. 10. 11. 08:33

[특파원 리포트] 중국은 핵 위협에 안전할까

입력 2022.10.11 03:00
 
 
1969년 소련이 당시 국경 분쟁을 벌이던 중국에 대해 핵공격을 추진하자 베이징 등 중국 대도시에는 대규모 지하 방공 시설이 건설됐다. /중국 인터넷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을 언급한 이후, 전 세계가 핵전쟁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모스크바의 핵 위협에 대해 중국만큼 온 국민이 덜덜 떨었던 경우도 없었다.

그 증거는 베이징 천안문에서 2㎞ 떨어진 ‘베이징 지하도시’에 찾을 수 있다. 1960~70년대 베이징에 건설된 지하 방공(防空) 통로 일부를 전시장으로 개조한 시설이다. 코로나 때문에 관람이 중단된 상태지만 전시장 앞에는 “1960~70년대 첸먼(前門)거리 주민들은 땅을 파 집과 집이 이어진 지하도시를 만들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안내문에 안 적혀 있는 내용은 지하도시를 만든 이유다.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의 핵 위협이다.

1969년 중소 국경 지대에서 양국 국경 수비대 간 국지전이 벌어졌다. 장갑차, 대포, 기관총 등 중화기가 동원된 전투로 사상자가 속출했다. 소련 군부는 핵미사일을 이용해 중국 미사일 기지와 동부 산업 거점을 공격하자고 주장했다. 중국은 전시 체제에 돌입했고 군에는 비상경계령이 내려졌다. 마오쩌둥 등 지도부는 지방으로 분산 대피했다. 중국은 핵보유국이었지만 모스크바를 타격할 미사일이 없었다. 마오쩌둥은 “굴을 깊이 파고, 곡식을 많이 저장하고, 패권(覇權)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내렸다.

베이징 지하도시도 이때 건설됐다. 10여m 깊이의 굴을 파는 데 하루 최대 30만명이 동원됐다. 당시 공사에 참여했던 루이훙씨는 “낮에는 직장에서 방공호를 파고, 집에 돌아와서는 동네 방공호를 팠다”고 했다. 미국 닉슨 정부가 소련을 압박하고 중소 회담이 시작되면서 핵 공포는 누그러졌지만 방공호 파기는 10년간 계속됐다.

 

50여 년 지나 우크라이나에서 고전 중인 러시아가 다시 핵 카드를 꺼내 들었다. 중국 외교관들은 유럽 측 인사들에게 “러시아가 핵 공격을 하면 중국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원론적 입장일 뿐 시진핑 주석은 ‘공동의 적’인 미국에 맞서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기운 듯 보인다. 올 들어 중국이 지난해의 3배 가까운 러시아산 가스를 수입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중국이 러시아로 기울고 북한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줄자 냉전의 냄새를 맡은 북한은 핵무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선제 핵 사용 방침,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국을 탓하며 북한을 두둔하고 있다. 중국은 북중 간의 큰 국력 차만큼 북한 핵미사일이 베이징으로 향하지 않을 것이라 자신감에 차 있는 것 같다. 하지만 1969년 중소 핵 위기가 보여주듯 폐쇄적 국가의 핵이 어디로 향할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예측 가능한 것도 있다. 중국이 북핵을 더 수수방관한다면 한국·일본 등 주변국의 핵무장론은 다시 커질 것이다. 그건 중국이 바라는 바가 아니지 않나.

8일 중국 베이징의 '베이징 지하도시’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1969년 소련이 중국에 대해 핵공격을 추진했을 당시 건설된 지하 방공(防空) 통로 일부를 전시장으로 개조한 시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