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중국은 핵 위협에 안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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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을 언급한 이후, 전 세계가 핵전쟁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모스크바의 핵 위협에 대해 중국만큼 온 국민이 덜덜 떨었던 경우도 없었다.
그 증거는 베이징 천안문에서 2㎞ 떨어진 ‘베이징 지하도시’에 찾을 수 있다. 1960~70년대 베이징에 건설된 지하 방공(防空) 통로 일부를 전시장으로 개조한 시설이다. 코로나 때문에 관람이 중단된 상태지만 전시장 앞에는 “1960~70년대 첸먼(前門)거리 주민들은 땅을 파 집과 집이 이어진 지하도시를 만들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안내문에 안 적혀 있는 내용은 지하도시를 만든 이유다.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의 핵 위협이다.
1969년 중소 국경 지대에서 양국 국경 수비대 간 국지전이 벌어졌다. 장갑차, 대포, 기관총 등 중화기가 동원된 전투로 사상자가 속출했다. 소련 군부는 핵미사일을 이용해 중국 미사일 기지와 동부 산업 거점을 공격하자고 주장했다. 중국은 전시 체제에 돌입했고 군에는 비상경계령이 내려졌다. 마오쩌둥 등 지도부는 지방으로 분산 대피했다. 중국은 핵보유국이었지만 모스크바를 타격할 미사일이 없었다. 마오쩌둥은 “굴을 깊이 파고, 곡식을 많이 저장하고, 패권(覇權)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내렸다.
베이징 지하도시도 이때 건설됐다. 10여m 깊이의 굴을 파는 데 하루 최대 30만명이 동원됐다. 당시 공사에 참여했던 루이훙씨는 “낮에는 직장에서 방공호를 파고, 집에 돌아와서는 동네 방공호를 팠다”고 했다. 미국 닉슨 정부가 소련을 압박하고 중소 회담이 시작되면서 핵 공포는 누그러졌지만 방공호 파기는 10년간 계속됐다.
50여 년 지나 우크라이나에서 고전 중인 러시아가 다시 핵 카드를 꺼내 들었다. 중국 외교관들은 유럽 측 인사들에게 “러시아가 핵 공격을 하면 중국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원론적 입장일 뿐 시진핑 주석은 ‘공동의 적’인 미국에 맞서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기운 듯 보인다. 올 들어 중국이 지난해의 3배 가까운 러시아산 가스를 수입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중국이 러시아로 기울고 북한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줄자 냉전의 냄새를 맡은 북한은 핵무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선제 핵 사용 방침,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국을 탓하며 북한을 두둔하고 있다. 중국은 북중 간의 큰 국력 차만큼 북한 핵미사일이 베이징으로 향하지 않을 것이라 자신감에 차 있는 것 같다. 하지만 1969년 중소 핵 위기가 보여주듯 폐쇄적 국가의 핵이 어디로 향할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예측 가능한 것도 있다. 중국이 북핵을 더 수수방관한다면 한국·일본 등 주변국의 핵무장론은 다시 커질 것이다. 그건 중국이 바라는 바가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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