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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태코너 ]<6624>유목민의 약속

bindol 2022. 10. 5. 09:02
[ 이규태코너 ]<6624>유목민의 약속 발행일 : 2005.07.18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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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중부도시 이스파한에 이르는 수만 리 길은 사막 복판으로 난 외길이다. 현지 고용의 기사가 졸음을 이기지 못 하는 것 같아 일행이 대신 운전하는 사이에 휘발유가 다하는 것을 몰랐다. ‘사막에서의 엔코는 죽음으로의 지름길’이라는 주유소의 간판 글이 생각난다. 기온이 급강하해 실제로 죽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드물게 오가는 차를 세워 기름을 얻었다. 떠나보내고 시동을 걸려고 하니 기름 얻느라 바쁘게 오가는 바람에 시동키를 떠나가버린 차에 놓아둔 것이다. 키 없이 시동이 가능하다 하여 지나가는 차들을 세워 손을 빌렸지만 전선을 난마처럼 흩어놓았을 뿐이었다. 공포 속에 밤을 새울 셈으로 웅크리고 있는데 누군가 차창을 두드린다. 기름을 주었던 차의 운전사였다. 서울에서 대구만 한 거리인 목적지에 가보니 키가 얹혀 있어 돌려주러 그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 키 하나를 두고 서울~대구 간 거리를 왕복한다는 것은 한국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오가는 동안의 비용이라면서 달러를 쥐여주었지만 끝내 받지 않고 ‘유목민의 약속입니다’라는 말만 남겨놓고 차를 돌려 돌아갔다.

아프가니스탄 내륙여행 때 고용한 현지인 운전사는 운행 중 만난 친지가 차 좀 가는 데까지 태워달라 해도 거절하고 태워주라 해도 막무가내이던 의지의 사나이였다. 한데 난산(難産) 중인 양을 안고 안달하는 양치기 소년을 보고는 급정거, 달려가 양을 안아 태웠다. 차를 돌려 달리면서 예정시간보다 2시간 늦게 됐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그의 성품을 알고 있는 터에 왜 허락을 받지 않고 양을 태우고 차를 돌리며 시간을 멋대로 지연시키느냐고 물었다. 한참 아무 말 없다가 나지막이 ‘유목민의 약속입니다’하는 것이었다. 짐승이건 사람이건 생명우선이요, 사람이면 빈부귀천이나 나라 인종 종교도 아랑곳없다는 것이 유목민의 약속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작전 중인 미군특수부대원이 탈레반의 기습을 받아 중상을 입고 산속을 헤매다가 양치기소년을 만났다. 소년은 이 미군을 업고 마을로 내려가 온 마을이 극진히 보호, 미군에 넘겨주었다는 작금의 보도가 심금을 울리고 있다. 탈레반의 위협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도 의연히 이겨낸 유목민의 약속이 아닐 수 없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