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에디슨과 한국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전등이 켜진 곳은 경복궁이었다. 그 역사적 사건을 목격했던 안 상궁(安尙宮)의 회고담을 들어 본다.
"병술년(1887) 경복궁 향원정(香遠亭) 못가에 커다란 자물통이 세 개 달린 서양집이 서고 서양사람이 그 속에 가득한 기계를 조작했다. 궁 안의 너른 대청과 마당에는 커다란 등롱(燈籠) 같은 것이 달려 멀리서 벼락치는 소리가 나면 못물을 빨아올리고 다른 한쪽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뜨거운 물이 흘러나왔다. 운현궁에서 일하던 나는 소문을 듣고 이곳까지 구경왔으며, 고장이 잦아 어찌나 꺼졌다 켜지길 자주 하는지 항간에 건달불로 소문났었다." 고종의 총신(寵臣)이던 육군 참장(參將) 이학균은 세태가 흉흉하니만큼 궁 안을 훤히 밝혀 둬야 한다고 설득, 당시 에디슨이 갓 발명한 발전기와 전등시설 일체를 푸트 미국공사를 통해 국무장관을 경유해 에디슨 회사에 발주했다. 이 최초의 한국 발전과 전등에 두 가지 불운이 겹쳤다.
발전용수로 쓰여 뜨거워진 못물이 향원정의 물고기들을 죽여 증어망국(蒸魚亡國)이라는 도참으로 민심이 흉흉한 데다, 미국인 기사 매케이가 권총 오발로 죽었기 때문에 발전이 중단되고 한국의 첫 에디슨 발명품은 고물이 되고 말았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파천해 있을 때 일이다. 당시 미국 공사 알렌은 미국에서 에디슨이 갓 발명한 유성기를 들여와 한국 재상들을 놀라게 해주고자 공관에 초대했다. 조병식 등 보수적 정승 판서들이 모인 가운데 알렌이 선보인 것은 에디슨이 맨 처음 발명한, 납(蠟)으로 만든 즉석 녹음이 가능한 원통형 유성기였다.
대신들이 방금 한 대화가 '문풍지 떨듯' 재생돼 나오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놀라면서 헛기침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짐짓 놀라지 않은 체하는 모습들이 완연했다. 희비나 노여움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고(喜怒不形於色) 요사스러운 것은 뜻을 상하게 한다(玩物喪志)는 유교의 가르침을 실천해 보임으로써, 놀라 나자빠지길 기대했던 알렌 공사를 실망시켰던 것이다.
이것은 에디슨 발명품의 한국인과의 첫 만남에서 형성된 해프닝들이 아닐 수 없다. 이 에디슨 발명품들이 미국의 한 에디슨 전문가에 의해 수집되어 부산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한다. 발명품보다 동서양의 부딪침에서 뜻을 보다 크게 갖는 역사 교실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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