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모스크바 까마귀

bindol 2022. 10. 6. 19:17

[이규태 코너] 모스크바 까마귀

조선일보
입력 2005.06.14 18:55
 
 
 
 

소련의 여류작가 올리가 드미트리예프나의 '까마귀'는 볼셰비키 혁명 전후의 러시아 지식인들의 고민이 주제다. 귀족이나 상류계급에 저항, 서민편을 들면서도 조여드는 생각의 자유에 대한 의구심이 밑바닥에 깔린 문제작이다. 세계적으로 까마귀 이미지는 북방(北方)일수록 좋고 남하할수록 나빠지듯 러시아에서 까마귀는 귀족의 상징인 거만한 독수리에 대립하는 소박한 서민의 상징이요, 새롭거나 밖에서 흘러드는 문명에 저항하는 서민의 대립항이다.

올리가의 '까마귀'는 러시아 지식층의 볼셰비키즘을 대하는 수용과 대립을 까마귀로 상징했음을 짐작케 한다. 몽골의 러시아 점거시대에는 민심수습책으로 까마귀를 우러르라 시켰다. 러시아에는 전통적으로 까마귀 숭배가 저변화돼 있었음을 말해주는 바다.

청나라의 심양(瀋陽)이나 북경(北京) 고궁(故宮)에 나무 까마귀를 앉힌 장대, 곧 조간(鳥竿)을 볼 수 있는데 이 북방국가들에서 까마귀는 천제(天帝)와 국왕의 메신저였으며 우리나라 무속인 솟대가 그 까마귀 문화를 잔존시키고 있다. 옛 러시아에도 천심 전달수단으로 까마귀 문화가 있지 않았겠나 싶어진다. 이 북방 까마귀 문화를 기마민족인 신라까지 가지고 내려와 일본에 전수시켰는데 그 연결고리로 연오랑(延烏郞) 세오녀(細烏女) 신화를 들수 있다. 본이 까마귀인 이 부부신이 일본으로 건너가 천지가 어두워졌으며 방황하는 일본의 시조왕인 진무왕(神武王)의 활 끝에 금까마귀로 앉아 천지를 밝혔다는 이 연결신화는 이 까마귀 이미지의 일본 전수랄 수 있다. 그리하여 러시아와 일본이 까마귀 이미지가 좋아 해치지 않는 나라로 손꼽혀왔다. 그 일본에서 까마귀들이 아이들을 급습했다더니 이번에는 모스크바에서 까마귀떼가 하강, 어린이들의 얼굴을 쪼는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60년대 히치콕의 명작으로 새떼가 여인이나 어린이들을 급습,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섬뜩한 영화가 생각난다. 히치콕에게 '왜 이런 영화를?' 하고 묻자 "자연은 언젠가는 복수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언제 어떤 재앙이 닥칠지 모른다는 예상 공포가 너무 빨리 닥친 모스크바의 까마귀 습격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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