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7] 망가진 국가 시스템의 대가(代價)
1945년 9월 중순, ‘마쿠라자키(枕崎) 태풍’으로 명명된 초대형 태풍이 일본을 강타한다. 쇼와 3대 태풍으로 꼽힐 정도로 기록적인 강풍과 호우를 동반한 이때의 태풍으로 11만 채 이상의 가옥이 전파(全破)되고, 3700명이 넘는 인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패전 후 혼란에 시름하던 일본에 엎친 데 덮친 격의 시련이었다. 2000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등 피해가 집중된 히로시마 주민들은 원폭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닥친 대규모 재해에 망연자실했다.
극심한 피해의 배경에는 자연의 가혹함만을 한탄할 수 없는 인재(人災)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기습으로 대미 개전을 감행한 군부는 그다음 날인 8일을 기해 ‘기상관제’를 실시한다. 기상 정보가 공개되어 적의 수중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명목이었다. 이에 따라 중앙기상대(현 기상청)의 기상 정보가 군의 관리하에 놓이게 되었고, 전쟁 기간 내내 민간 대상 일기예보가 방송이나 신문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사회의 모든 시스템을 전쟁 수행 도구로 전락시키는 군국주의의 광풍이었다.
당시 일본은 오카다 다케마쓰 중앙기상대장의 진두지휘하에 첨단 인프라와 전문가를 갖춘 세계적 수준의 기상 관측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군부의 결정은 한순간에 그를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1945년 8월 22일을 기해 기상 관제가 해제되었으나, 3년 넘게 휴지(休止) 상태였던 일기예보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제때 정보를 전달 받지 못한 주민들이 태풍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이 피해를 키운 주요 요인이었다. 그릇된 신념에 경도된 세력이 정권을 잡고 이념을 앞세워 정책을 좌우하면 멀쩡한 국가 시스템도 한순간에 망가질 수 있다. 뭐든지 만들기는 어렵고 부수기는 쉬운 법이다. 한번 망가진 국가 시스템은 단기간 내에 복구되기 어렵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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