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수직(垂直) 녹화시대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에 있는 철학자 칸트의 산책로는 유명하다. 몇 분의 착오도 없이 매일 같은 지점을 통과하기에 주민들은 그로써 시간을 가늠한다 하여 시계선생이라는 별명까지 얻고 있다.
칸트는 산책에서 돌아와 그날 관찰한 자연의 추이를 일기에 적었다. 어느 담벼락의 민들레 싹에 연둣빛이 더했다든지 어느 집 벽체에 포도덩굴의 감김새가 세 번에서 다섯 번으로 늘었다든지…. 그 일기에 보면 그의 산책길의 담벽이나 벽체는 꽃들이 만발하고 푸른 잎으로 싸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철학적 사고에 열중해 있을 때 칸트는 무의식중에 이 집 담벼락의 화분을 들어다 저 집 벽체에 걸어놓기도 하고, 저 집 야생초를 들어다 이 집 담벼락에 걸어 놓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무의식중의 절도행위를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한다.
이로 미루어 칸트가 평생 단 한 번도 그 고을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쾨니히스베르크는 화초나 수목이 뜰에서만 기르는 수평(水平)공간만이 아닌 주거공간의 벽체나 담벼락 등 수직(垂直)공간에도 어떤 형체로든지 녹화를 하고 꽃을 피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는 땅이 각박하여 나무라고는 올리브와 무화과 나무가 고작이요, 꽃은 화분에다 정성 들이지 않고는 잘 자라지 않는다. 그 불모의 반동으로 그리스의 시골길을 걷다 보면 칸트의 산책로가 이러했으려니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금이 간 오지그릇이나 알루미늄 빈 깡통 하나 버리지 않고 흙을 담아 꽃들을 피워 담벼락이나 벽체에 단을 쌓거나 새끼줄을 쳐 몇 단으로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지붕 밑 방이나 2~3층 창가에서 아래로 처지는 덩굴 풀을 늘어뜨려 벽체를 녹화해 놓기도 했다.
사막의 녹화 없이 이스라엘의 앞날은 없다며 수상직을 고사하고 사막에 들어간 벤구리온의 연구소에서 수직녹화 현장을 구경하고 바야흐로 수직녹화시대가 도래했음을 실감하기도 했다.
도시는 수평공간을 협소화시킨 데 반비례해서 수직공간을 기하급수로 확대시켜 왔다. 그래서 도시는 사막화하고 살벌하다. 아파트 등 고층건물들의 수직공간이 녹화되고 꽃 피웠을 때 도시인상뿐 아니라 도시인의 마음이 눅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식목철에 담쟁이·능소화 등 벽체 녹화를 장려한다는 당국에 적극성을 보다 재촉하고 싶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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