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반폭탄(反爆彈) 인간 띠
독일, 구소련의 군사지역을 폭탄투하 훈련장으로 이용하려는 데 반대하는 인간 띠가 보도되었다. 저항수단으로 손에 손잡고 목숨을 무기로 영역을 지키려는 인간 띠 역사는 유구하다. 기원전 400여년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침공해 성을 포위했을 때 피리 부는 여인을 앞세운 아테네 아녀자들이 손에 손을 묶고 성을 나와 성 둘레를 싸고돌았다. 이 인간 띠를 두고 크세노폰은 '스파르타의 그 강한 군율(軍律)이나 화살도 인간 전선 앞에서는 무력했다'고 적어 남겼다. 이 아테네 인간방패는 그 후 유럽의 반전(反戰) 무저항운동 수단으로 자리매김해 내렸고, 독일의 반폭탄(No Bombs)이라는 인간 글씨도 그 흐름이다.
약소국가였던지라 우리나라에 인간 전선의 사례는 잦았다. 임진왜란 때 왜장 구로다(黑田)가 3000 병력으로 연안성을 포위하자 군민이 앞다투어 도망치려 했다. 이에 부사 이정암(李廷?)은 최전선에 마른 풀섶으로 단을 높이 쌓고 그 위에 올라앉아 불을 지르고 자신의 처첩-자제-노비들로 인간사슬을 맺어 싸고돌게 함으로써 도망치려는 군민을 붙들어 독전(督戰)하여 대첩을 거두었다. 고창(高敞) 등지의 세시민속에 부녀자들이 돌멩이를 머리에 이고 옛성을 도는 성 밟기는 바로 왜구나 외침에 여성들이 싸고돌았던 인간 전선의 잔존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전라도 해안지방에 널리 번졌던 강강술래는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외적에 대항하는 인간 띠의 잔존이라는 설도 설득력을 갖는다.
한말 일본이 영친왕을 일본에 납치해 간다는 소문이 퍼지자 영남 유생들은 손깍지 끼고 경부선 철도 위에 누워 기찻길을 막았는데 그 길이가 수십 리에 이르렀다. 일제 초기 보길도(甫吉島)에 일본 자본가 하나가 산림을 벌채하고자 헌병대를 앞세워 상륙하자 도민은 남녀노소 없이 새끼로 몸과 몸을 묶고 해안선을 둘러싸 상륙을 저지했었다. 한 냇물 줄기에서 논물을 대야 하기에 마을간의 잦았던 보(洑)싸움에서 부녀자들이 손과 손을 묶고 보 위에 누워 저항하는 것은 관례였다. 가문의 성쇠를 좌우하는 지맥(地脈)을 끊는다는 이유로 산소싸움이 잦았고, 가문 부인네들을 총동원해 손깍지 끼고 산소에 누워 무덤쓰는 일을 방해하는 인간방패도 흔했었다. 평화는 이처럼 동서고금 할 것 없이 여성 몫이었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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