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6567> 윗물 정화조

bindol 2022. 10. 8. 11:00

[이규태 코너] <6567> 윗물 정화조

조선일보
입력 2005.03.06 18:23
 
 
 
 

영조 때 고급 공무원이랄 호조당상이던 김수팽(金壽彭)이 역시 선혜청의 고급 공무원으로 있는 아우 집에 들렀다가 마당에 염료(染料)인 남(藍) 항아리가 널려 있는 것을 보고 어디다 쓰려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제가 염색으로 살림을 보태고 있습니다" 하자 이 항아리들을 뒤엎어 쏟으면서 "우리 형제가 후한 국록(國祿)을 먹으면서 이런 영업을 하면 저 많은 가난한 백성은 뭣으로 생업을 하란 말이냐"라고 했다. 그 자그마한 돈벌이도 피해야만 했던 전통 공직자 풍토에서 땅을 마련하거나 집의 칸수를 늘리거나 돈을 놓아 늘리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윤석보(尹碩輔)가 풍기 군수로 있을 때 고향에 두고 온 아내 박씨가 가난에 쪼들리다 시집올 때 혼수로 가져온 비단옷을 팔아 손바닥만한 남새밭을 마련했다. 이 소문을 들은 윤석보는 사람을 내려 보내 '녹을 먹으면서 땅을 산다는 것은 임금의 덕을 사들인 땅만큼 먹어드는 소행이오. 당장에 돌려줘 나의 허물을 덜어주시오' 했다.

대제학 벼슬인 김유(金?)의 고향 집은 겨우 두어 칸으로 아들들이 거처할 방이 없어 처마 밑에 자리를 깔고 자곤 했다. 그나마도 장마철에 비가 새자 이를 고치면서 반 칸쯤을 내어 지었다. 오랜만에 고향에 들른 아버지가 달아낸 것을 느끼지 못했을 만큼 미미한 증축인 것을 뒤늦게 알고는 밤중에 남들 모르게 헐어내게 했던 것이다.

이 공무원의 재산증식은, 해마다 6월 15일과 12월 15일 두 차례 칠사실적(七事實績)이라 하여 재산을 늘렸는지, 사치를 했는지, 민원을 샀는지, 관물을 축냈는지, 뇌물을 받거나 바쳤는지, 품행에 탈이 없었는지, 제가(齊家)에 흠이 없었는지 일곱 가지를 고과(考課)했는데, 상중하(上中下) 평점으로 인사에 반영되었었다. 지금 윗물인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증식을 보면 아랫물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요, 더더욱 관민괴리에 지렛대로 작용할 것은 뻔한 일이다. 권력 개입이나 불법이 없더라도 공직 기간에는 돈 쪽에 고개를 돌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전통 공직풍토였다. 칠사실적을 현대화한 공무원의 윤리의식을 지수(指數)화, 선거나 고과 때 적용시키는 것을 제도화하는 윗물 정화조를 들여 놓았으면 한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