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이웃 삼척(三尺)'

bindol 2022. 10. 8. 11:01

[이규태코너] '이웃 삼척(三尺)'

조선일보
입력 2005.03.03 18:18
 
 
 
 

이웃 사촌이란 말은 익히 알지만 이웃 삼척이란 말은 생소하다. 알고 보면 이웃 사촌과 비슷한 뜻으로 별나게 강한 한국인의 정착(定着)생활에서 생겨난―오늘에 되살리고 싶은 생활의 지혜다.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집 앞을 쓰는 것이 조상전래의 관행이었다. 한데 자기 집 앞만 쓰는 것이 아니라 이쪽저쪽 옆집 앞도 석자 남짓씩만을 쓰는 것이 관행이었고, 어릴 적 집 앞을 쓸러 나가면 아버지 어머니는 '이웃 3척이다'고 꼭 일렀던 기억이 난다. 눈이 많이 내렸던 어느날 눈 쓰는 것이 신도 나고 또 이웃집 아저씨가 감기로 일어나지 못할 것으로 짐작하고 옆집 앞도 석자만이 아닌 모두를 쓸었던 적이 있다. 쓸고서 칭찬받으려고 어머니에게 옆집 앞도 다 쓸었다고 했는데도 전혀 칭찬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해서 '나 착하지 않아?'하고 칭찬을 유도해 보았지만 '나중에 알게 돼'라고 할 뿐이다.

그 며칠 후 눈이 많이 내린 아침에 이를 치우고자 나갔더니 우리 집 앞이 말끔히 치워져 있음을 보았다. 일전에 대신 치워준 옆집의 아저씨가 쓸어준 것이 분명했다. 서로 이웃끼리 쓸어주는 것을 주고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하다. 하지만 쓸어줌으로써 이를 갚아야 겠다는 마음의 부담을 주어 폐를 끼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칭찬하지 않았던 것도 바로 이 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웃을 돕는 데 굳이 3척만으로 제한한 이유가 알 것만 같았다. 제 집 앞만 쓴다는 것은 매정한 일이요 그렇다고 옆집 앞도 모두 쓴다는 것도 폐가 되는 이 정착사회의 공존(共存)논리에서 이웃 3척이라는 지혜가 생겨났음을 실감한 것이다.

미국 도시들에서 눈이 내리면 제 집 앞을 쓰는데 노인가정 등 인력이 없으면 어린 학생과 계약 아르바이트 제설을 한다. 자조(自助)정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쓸지 않으면 시청에서 와서 쓸고 대신 벌금이 중과되는데 그 벌금이 아르바이트 쓰는 값보다 비싸다는 타산 때문이다. 이동성 사회의 계약과 타산, 정착성 사회의 인정과 배려가 이 눈 쓸기에서 표출된 것이다. 엊그제 눈 내리는 아침거리를 걸어보니 제 집 앞 쓰는 사람이 거의 없음을 보고 '이웃 삼척'이 새삼스러워 적고 넘어가는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