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한국인의 손가락

bindol 2022. 10. 8. 10:59

[이규태코너] 한국인의 손가락

조선일보
입력 2005.03.08 18:30
 
 
 
 

미국의 백인 아이들로부터 따돌림당해온 딸이 공기놀이 하는 것을 보고 앞다투어 놀자고 달려들더라는 이민간 한 어머니의 신문 투고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 별난 손가락 재간을 보고 놀고 싶어졌을 것이다.

미국에서 젓가락질을 비롯, 한국아이 하면 연상된다던 손 그림자 짓기와 실뜨기도 손가락 재간의 유전자 때문이다. 영국 의과대학들의 필수교과서인 J Z 영의 ‘인간연구 서설’에 보면 사람이 나무 위에서 살았을 때는 엄지손가락 근육, 곧 무지근(拇指筋)이 발달하고, 지상에 내려와 물건을 들어 나르게 되면서 삼각근(三角筋)이 발달, 파워 그립이 강해지고 손으로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손가락의 재간을 좌우하는 장지근(長指筋)이 발달, 프리시전 그립이 강해진다 했다.

근육은 쓸수록 발달하고 쓰지 않을수록 퇴화한다고 할 때, 한국인의 장지근이 별나게 발달했음은 조상들의 생업이 이 세상 어느 다른 나라보다 손가락을 많이 쓰게 했기 때문임이 비교문화 차원에서 입증되고 있다.

갓 깨어난 병아리 암수감별에 손가락을 써야 하는데 그 실패율이 현저하게 작은 것이 한국인임은 미국 양계업계의 상식이 되고 있다. 병아리의 항문께에 거의 식별 불가능한 미세 돌기 하나가 있는데 그 주변의 온도 습도 장도의 차이를 손가락 끝으로 감지해 가려내야 하는 이 작업이야말로 초감각의 영감(靈感)작업이다.

 

한국인의 감별 실패율은 5% 미만인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15% 이상이다. 한국인 버금으로 실패율이 낮다는 스위스로 겨울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남녀노소 없이 창가나 볕받이 좋은 양지에서 뜨개질하는 것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농한기에 양모 직물로 생계를 보태기 위한 것으로 알았으나 알고 보니 국력(國力)배양 운동의 일환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지하자원이 없는 스위스는 손가락 재간이 좌우하는 시계공업이 지탱하고 있고 이 재간이 죽으면 국력이 죽는다는 국가차원의 뜨개질이었다.

우리나라는 시계보다 한결 정밀성을 요구하는 반도체 산업이 나라를 지탱하고 있으며 미래사회는 보다 정밀한 나노산업에의 적성이 희망을 지피고 있는 손가락 재간의 종주국이다. 스위스처럼 그 국력의 지탱을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둘러보게 한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