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올빼미족(族)
30여년 전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 채소상인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플래카드를 든 데모 행렬을 본 기억이 난다. 이 데모를 일으킨 요인이 한국인의 민족 자질을 선명하게 부각시켜주는 것으로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미국에서 채소상인은 아침 식탁을 위해 가게 문 여는 시간이 이를수록 좋다. 그래서 밤에 일찍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민족일수록 적성이다. 한국이민이 늘면서 미국 대도시들의 채소가게가 한국인에게 넘어와 그 무렵 로스앤젤레스에서만도 과반을 한국 이민자가 차지하고 있었다.
전날 농장에 가 채소를 떼어 아침 7시에 가게문을 여는 것이 상식인데 한국상인들은 한 시간 앞당겨 6시에 문을 열었다. 조합이 있는 것도 아니요, 서로 약속한 것도 아닌 조기(早起)생리가 이심전심으로 그렇게들 했다.
손님을 빼앗기자 비한국인계 채소상인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6시에 일어나자 한국상인들은 3~4시에 일어나 차를 몰아 이슬방울이 맺힌 신선한 채소를 실어다 가게 머리에 쌓아놓곤 했다. 손님의 가는 발길은 뻔한 일이다.
하지만 채소상을 집어치우면 집어치웠지 3~4시에 일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코리안 고 홈!'을 외치며 거리를 누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밤이 늦고 아침도 늦은 민족을 속칭 올빼미족(族)이라 하고 밤에 일찍 자고 새벽 일찍 일어나는 민족을 아폴로족이라 한다. 파리에서 가게문을 여는 것은 아침 10시 안팎이요, 스페인에서 우리나라 8시 정도의 러시가 일어나는 시간은 정오다.
라틴 문화권이 올빼미족이라면 게르만 문화권은 아폴로족이다. 영국이나 독일처럼 인사말에 아침이 들어간 민족은 대체로 아폴로족이다.
아침보다 더 이른 밤의 안녕을 묻는 한국의 인사는 조기(早起)성이 더하다. 옛 어머니들은 아직 지지 않은 서천의 달을 샘물에서 길어야 가족의 안태(安泰)를 비는 정화수(井華水)로써 신통력이 생긴다 믿었다.
나라 다스리는 장소와 사람을 조정(朝廷), 조신(朝臣)이라 하며 아예 나라이름이 조선(朝鮮)인 우리나라는 조기문화의 종주국이다. 그 한국인이 세상에서 세 번째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올빼미족이라는 보도는 어딘가 겉만 훑어 본 결과가 아닐까 싶다. 문
화란 세태가 바뀌었다고 그렇게 쉽게 호들갑 떠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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