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도스토예프스키 로또

bindol 2022. 10. 8. 11:23

[이규태 코너] 도스토예프스키 로또

조선일보
입력 2005.02.15 18:15
 
 
 
 

잘나가는 러시아 스포츠 로또 복권에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초상이 들어가 유족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복권 초상으로 이 대문호가 선택된 이유가 없지는 않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솟구쳐 오르는 여자에의 정념을 ‘죄와 벌’의 작중 인물인 소냐의 순애(純愛)로 승화시켰고, 술의 유혹을 역시 작중 인물인 카라마조프 형제로 하여금 승화시켰다.

하지만 그에게 엄습하는 도박에의 유혹만은 승화시킬 수 없을 만큼 강력했던지 도박 사기로 감옥을 드나들었고, 몰래 아내의 스커트를 저당 잡혀 외출을 하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16세 때 시골 장터에서 우연히 복권 한 장 산 것이 기나긴 인생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그가 잡지에 발표한 단편 때문에 알게 된 여학생 아포리나리아를 사랑하여 그녀를 뒤쫓아 파리까지 갔지만 그녀로부터 스페인 의과대학생과의 사이를 고백받는다. 실연의 유럽 방랑을 하면서 사춘기 때 도박으로 다친 정신 상해가 도진 것이다.

여행 중 도박에 몰두, 무일푼으로 거지행세를 하기도 하고 사기로 감옥출입도 했다. 중편 ‘도박자’는 바로 이 도박행각을 소재로 한 것이다. 이 ‘도박자’를 연재할 때 담당했던 속기사인 25세 연하의 안나와 재혼, 신혼여행 명목으로 유럽으로 떠났지만 실은 노름빚으로부터의 도피였다.

 

그 도피행각 중에도 도박의 노예가 되어 아내의 패물을 들고 전당포 드나드는 것이 일과였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내준 귀걸이를 저당 잡혀 날리고는 아내 앞에서 무릎 꿇고 울며 빌었다. 그리하고도 그 이튿날 자신의 결혼반지를 저당 잡혀 날리고 있다.

대표작 '죄와 벌'은 그의 도박이 아니었던들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러시아 통보(通報)'의 편집장으로부터 작품을 쓰기로 약속하고 얻은 300루블의 전도금마저 날려버린 그가, 재촉을 받고 구상한 작품이 바로 '죄와 벌'이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숨지기 몇 시간 전에도 도박 욕망을 못 버리고 성서점(聖書占)을 쳤다. 무작위로 펼친 대목을 아내가 읽었다. 마태복음 3장 14절로 그리스도가 세례받는 대목이었다. 그는 말했다. 주님의 부르심에 당첨된 것이라며 눈을 감았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