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남대문 앞 연못 복원을

bindol 2022. 10. 8. 11:22

[이규태 코너] 남대문 앞 연못 복원을

조선일보
입력 2005.02.17 18:01
 
 
 
 

1896년 4월 11일자 독립신문 잡보란에 난 기사를 읽어본다. 남대문 밖 아침시장에 어떤 사람이 고니(白鳥) 한 마리 잡아왔는데 그 마을 사는 이가 10냥을 주고 사다가 남대문 앞 연못에 넣어주었다.

한데 연못의 고기들이 좋아하여 고니는 날아갈 생각을 않고 주야로 노니는데, 며칠 전에 인근에서 닭이 나는 것을 보더니 저도 따라 날아가버려 애를 태우더니 그 사이에 정들었던지 다시 돌아와 놀기를 한 달을 넘겼고 그 유유자적한 정취가 여느 새와 달라 격이 높아 보인다 했다.

지금 남대문 앞에 이 같은 연못에 고니가 노니는 광경이 펼쳐진다면 서울을 드나드는 그 많은 사람들의 각박한 마음을 얼마나 눅여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더욱이 국보 제1호인 남대문을 시민 곁으로 다가오게 하는 시민공원화 계획으로 그 남지(南池)가 있던 바로 그 자리에 2500평 규모의 광장을 들여세운다는 보도를 접하고 보니 고도(古都) 복원의 비전이나 원칙이 없음을 절감케 한다.

세조 이래 내리 3대를 세도했던 한명회가 상소하기를, 한양 정도 때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고자 남대문 전에 못을 파 남지(南池)라 일컬었는데도 불이 끊이질 않자 백성의 관심 밖에 나서 메워왔다 하면서 복원할 것을 상소했다.

 

정조 때 기록인 ‘한경지략’에는 연산군 때 간신 김안로가 살았던 집터를 파 못을 만든 것이 남지라 했는데 남지 근처에 집이 있어 원한 품은 백성들이 집터를 파헤쳤을 수는 있어도 이미 그 이전부터 남지는 있었다.

같은 것끼리는 서로 주술적으로 통한다는 유감주술(類感呪術)로 이 남지를 복원시키면 사색당파의 남인(南人)이 성한다는 속신이 항간에 번져있었다.

순조 때 이 남지를 복원하자 ‘이전에 이 못을 복원했을 때 남인인 허목(許穆)이 득세하더니 이번에는 누가 득세할꼬’ 하는 유언비어가 나돌더니 남인인 채제공(蔡濟恭)이 득세했었다.

1899년 지금 서울역을 확장하면서 이 남지를 메우려들자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는 민족진영의 구심(求心)명분이 되기도 했던 남지다.

풍수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실학을 실천철학으로 삼았던 남인사상의 고장이라면 명분이 서고 분수나 폭포공원으로 복원, 자연공간의 도심 확대에도 명분이 가중되는 남지 복원이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