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북한 재산상속법
옛 시골에서 예닐곱 살만 되면 논 한쪽 여남은 평을 떼어주어 농사일을 시켰는데 이를 '내논'이라 했다. 그 내논에서 모를 심고 피사리를 하며 논물을 대고 김을 매며 새를 보고 벼를 베는 일을 도맡아 시켰다. 곧 내논은 농사 견습답이다.
밖에서 놀다 오줌이 마려우면 달려가 내논에 가서 누었고 길 가다가 짚신 헤진 것이나 말라 비틀어진 쇠똥이 뒹굴고 있으면 이를 주워들고 내논에다 던졌다. 누가 굳이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그렇게 내논을 걸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내논의 노동 대가는 그 내논에서 주운 이삭으로 엿 한 가래 사먹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에서 터득한 심성은 막중하다.
농사 짓는 법 말고도 좁은 땅에 정성을 쏟을수록 수확이 많아진다는 지혜를 내논에서 터득한다. 우리 국토의 70%가 비생산적인 데다 인구밀도는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원천적 가난이 한국인으로 하여금 손을 많이 쓰고 공을 많이 들이게 했고 따라서 가족의 힘을 촉발·결속시키는 가족의식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농사 짓는 데 악조건을 극복하는 감내력이 탁월하고 단위면적당 생산성을 높이는 근면한 민족이 된 것은 바로 가족 결속이 원인이요, 가족의식만 촉발되면 못하는 것이 없었던 한국인이다.
아열대 작물인 벼 농사가 가능한 북쪽 한계(限界)가 임진강 유역인데 압록강 두만강 건너 만주 지방까지 북상시킨 것은 바로 근면한 한국인이었다. 그 지역에 한국에만 있는 한자인 답동(畓洞)이란 지명을 찾아볼 수 있는데 한국인이 벼농사를 북상시켜 성공시켰던 현장이다.
1937년 극동 소련땅에 사는 한민족 20만명을 기후적으로 농사가 불가능한 중앙아시아 5개 공화국에 강제이주, 황무지에 던져놓은 저의는 한국인이 가면 악조건을 극복, 생산성을 높일 것이라는 실속을 노린 것이었다. 그 근면과 저력의 바탕이 한국인에게 별나게 강한 가족의식임은 많은 학자들이 지적해온 바다. 곧 가족의식은 한국인의 저력이다.
생산성을 높이고자 북한에서 집단영농에 수렴됐던 가족영농을 부활시키더니 이어 재산을 자손에게 물리는 상속제도도 도입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민족적 동일성인 가족의식을 집단의식과 대체시킨 것으로 그 귀추가 주목되는 것이다.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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