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노인 자살

bindol 2022. 10. 9. 15:30

[이규태 코너] 노인 자살

조선일보
입력 2005.01.18 18:18
 
 
 
 

그림형제는 인생 70을 짐승에 비유한 독일 민화를 동화로 펴냈다. 신(神)이 동물의 수명을 정할 때 평등하게 30년으로 했다.

이 결정을 보고 노새와 개, 원숭이는 고통이 따르는 긴 수명에 불만을 품고 항의, 각기 18년 12년 10년을 감면받았다. 곁에 있던 욕심쟁이 사람은 이 감면받은 40년을 덤으로 얻어 70 수명이 됐다. 본명 30년이 지나고 노새의 18년은 남을 위해 등짐 나르는 세월로 보내고 개의 12년은 이도 빠지고 이 구석 저 구석 숨어다니며 불평만 하고 응얼대며 지새운다. 남아있는 원숭이의 10년은 기억력도 없어져 언행이 엇박자를 놓아 손가락질과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늙음'이란 대저를 남긴 보브알은 미개 종족이 원숭이 나이에 이르면 에스키모족처럼 자살을 권하고 고려장처럼 유기하여 죽어가게 하는 기로속(棄老俗)이, 여진족처럼 화살로 쏴 죽이는 살로속(殺老俗)이 죄책감 없이 관습화된다 했다.

에스키모족은 견년(犬年)에 이르러 생계에 짐이 되면 멀리 고기잡이 나갈 때 모시고 가 떠내려가는 빙산에 올라앉게 하거나 바다표범 가죽으로 만든 배를 타고 돌아오지 않는 뱃길을 스스로 떠난다. 유목 민족일수록 노인이 견년이 되거나 망년기가 돌면 자살을 유도하는데 효자 아니고는 그러할 수 없는 것으로 미덕이 돼 있다 했다. 문명이 발달하고 도덕이 원숙해질수록 노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학대는 지능화한다는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의 예언은 들어맞고 있다. 이 괄시를 피하는 길은 스스로가 챙겨야 한다는 자구책도 로마나 현대가 다르지 않다. 키케로가 설정한 노인천국에서는 소크라테스처럼 70세에 젊은 아내에게 젖먹이를 안겨주고 눈이 흐려지자 감각이 살아있는 손가락 끝을 살려 리라를 배우고 있다.

송나라 때 학자 주신중(朱新仲)은 바닷가에 거대한 틀을 놓고 어망을 짜는 일을 80 넘도록 계속하고 있는 노어부 이야기를 적어 남겼다. 그토록 큰 어망이 쓸모가 있을 턱이 없다. 한 올 한 올 명을 연장하는 연수망(延壽網)인 것이다. 알아주지도 않고 할 일도 없으며 고독을 못 참아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앞당기는 노인 자살 시대에 지혜를 주는 연수망이다.

(이규태 ky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