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발로 그린 그림

bindol 2022. 10. 10. 09:02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 코너]발로 그린 그림
입력 2004.10.14 18:39:45 | 수정 2004.10.14 18:39:45

서양 미인선발대회의 기준이 되고 있는 미의 상징 ‘미로의 비너스’ 상에는 팔이 없다. 미로의 비너스뿐만 아니라 메디치의 비너스나 에드키리언의 비너스에도 팔이 없다. 이 미의 상징에 팔이 없다는 것은 팔이 여체를 아름답게 하는 데 없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댕의 대표작인 ‘팔 없는 여인의 명상’에서 팔이 없다는 것이 조금도 미완성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히려 없는 팔로 포옹하고 없는 손으로 더듬는 허공의 미를 실체의 미가 따르지 못한다는 것이 된다.
인간이 예(藝)와 지(知)를 창조하는 데 손이 무용지물이라는 조형물로 전기 로댕의 조각 ‘신(神)의 손’을 들 수 있다. 두 손을 아주 추하고 험상궂게 새겨놓은 저의에는 신이 사람을 만들 때 성욕과 물욕과 권욕 덩어리로 만든 데 대한 증오가 작용한 때문일 것이다. 신의 손이 그러할진대 인간의 손임에랴. 돈이나 헤아리는 손, 유혹하고자 요염하게 손짓하는 손, 아부코자 닳도록 비벼대는 손, 줏대 없이 남따라 드는 손, 손들….
같은 맥락으로 우리 역사에서 허녀(許女)의 손을 들 수 있다. 임진왜란 때 경상도 현풍(玄風)에 침입한 왜병들은 예외 없이 겁탈을 일삼았다. 이 고을 허세겸의 17세 난 딸 허녀가 왜병에게 쫓기어 숲 거리로 도망을 쳤다. 감당할 수 없자 큰 나무 한 그루를 두 팔로 부둥켜안고 한사코 항거했다. 심술이 복받친 왜병은 부둥켜안은 허녀의 두 팔을 뎅강뎅강 잘라버리고 갔다. 못 채운 야욕을 해코지로 푼 것이다. 허녀의 부모는 이 팔 없는 딸을 산문(山門)에 드리고 부처님의 자비에 맡겼다. 허녀는 입과 발로 호미와 낫을 취하여 절 살림을 도우는 한편, 입에 바늘을 물고 만다라의 수를 놓고 발에 붓을 꽂아 선시(禪詩)를 짓고 사군자를 쳤으며 사경(寫經)을 일삼았다. 곧 손이란 삶에서 여분의 것임을 전설로 남긴 허녀였다.
세 살 때 열차에 치여 두 팔을 잃은 오순이씨가 입과 발로 그림을 그린 구족(口足)화가로 중국에 유학, 박사학위를 받고 이번에 동양화 초빙교수로 대학강단에 서게 돼 심금을 울렸다. 허녀에 이어 인간의 손을 작게 작게 만드는 데 크게 크게 기여한 오녀(吳女)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